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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영화 '화녀' 배우 윤여정의 데뷔작 - "대종상영화제 신인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했던 작품"

1971년 개봉된 영화 '화녀'는 당시 TV 드라마를 통해 한창 인기를 모으던

배우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1971년 23만 명의 관객을 모아 그해에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윤여정이 이 작품을 통해 대종상영화제의 신인상과

청룡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고 , 스페인 시체스시에서 열린 제 4회 

국제환상공포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7개국에서 출편한 40여편 가운데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다.

영화속으로 ~~~고고 

 

1. 영화 '화녀' 기본정보 

 

장르 로맨스, 공포, 멜로, 스릴러, 미스터리

감독 김기영

각본 제작 정진우

주연 남궁원, 윤여정, 전계현

촬영 정일성

음악 박석인, 한상기

제작사  우진필름

배급사  콘텐츠존, 디자인소프트

스트리밍 wavve 

개봉일  1971년 4월 1일  

재개봉 2021년 5월 1일

화면비 2.35 : 1

상영 시간 98분

월드 박스오피스 $6,106

대한민국 관객 수 234,110명

상영 등급 영등위 18세이상- 청소년 관람불가

 

남궁원, 윤여정, 전계현 주연의 영화.

감독 김기영이 본인의 영화 하녀의 이야기 구조를 리메이크했다.

당시 TV 드라마를 통해 한창 인기를 모으던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남궁원 김동식(작곡가) 역
전계현 정숙(동식의 처) 역
윤여정 오명자(식모) 역
최무룡 조부장(형사) 역
김주미혜 조경희(빠 여급) 역

 

줄거리

서울 근교 양계장 근처에서 동식(남궁원)과 명자(윤여정)의 시체가 열두 곳의 칼자국이

난 채로 발견돼,  수사진은 강도 살인으로 판명하고 수사하게 된다.

 

명자(윤여정)는 양계장 집 주인 정숙(전계현)이 좋은 데로 시집을

보내준다는 약속을 하자 무보수로 식모 일을 한다. 

 

 

 

정숙이 친정에 간 사이, 가수가 되고픈 혜옥은 곡을 받기 위해

정숙의 남편이자 작곡가인 동식(남궁원)을 유혹한다.

 

 

이때 정숙의 청을 받은 명자(윤여정)가 끼어들어 혜옥을 내보내지만,

동식(남궁원)은 강제로 명자(윤여정)와 관계를 갖고 명자(윤여정)는 임신하게 된다.

동식(남궁원)은 정숙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동식의 부인 정숙은 강제로 명자(윤여정)의 애를 떼게 한다.

 

 

임신한 정숙이 아이를 낳고 자신을 돌보지 않자 화가 난 명자는 분풀이로 동식의 아들 창순을 죽인다.

이에 정숙은 명자(윤여정)를 쥐약으로 독살하려다 명자(윤여정)의 음모에 걸려들어 곤궁에 처하게 된다.

명자는 우연히 사람을 죽이게 되고 동식이 죽인 것처럼 꾸민다.

 

 

가족을 지키고 싶은 정숙(전계현)은 동식을 명자에게 주고 시체를 처리한다.

한강변에 버려진 시체를 찾은 경찰이 들이닥치자 동식과 명자는 약을 먹고 자살하고,

정숙은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강도가 침입한 것처럼 꾸민다.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정숙은 비오는 거리에서 울부짖으며 무너진다..

 

 

2. 영화 시놉시스

 

등장인물

 

윤여정(명자)

한 유부남에게 겁탈당한 후 상경한 시골 처녀.

양계장을 운영하는 동식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남궁원(동식) 

작곡가. 명자를 들인다.

 

전계현(정숙)

동식의 부인. 양계장을 운영한다.

 

 

최무룡(조 형사)

 

 

오영아(혜옥)

 

 

시놉시스

작곡가 동식은 양계장을 운영하는 아내에 의지해 살고 있다.

어느날 명자가 하녀로 집안에 들면서 가정의 평온은 깨지게 된다.

아내가 집을 비운 새 동식은 명자를 겁탈하고, 이후 임신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명자의 아기를 강제로 유산시킨다. 이에 명자는 쥐약으로 가족을 몰살시키려 한다. 

 

 

 

요약

유부남에게 겁탈당한 시골 처녀가 그의 가정을 무너뜨리는 내용으로,

김기영 본인의 대표작인 하녀를 1970년대 당시의 시대상에 맞게 새롭게 변주했다.

김기영의 설명에 따르면, 비슷한 상황이 시대별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2층 양옥집도 도시 변두리의 양계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언뜻 보면 단순한 치정 복수극 같지만, 김기영 특유의 상식을 깨는 연출과 대사,

시골 처녀의 똘끼(…)때문에 코믹하면서도 컬트 영화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윤여정

윤여정 본인이 가장 자신을 잘 드러내는 필름으로 꼽는다고 한다.

1971년 윤여정의 스크린 데뷔작이기도 한 화녀는, 촬영 당시에는 작업에 참여하면서도

김기영이 얼마나 천재인지 몰랐으나 50년 뒤에 돌이켜보니 이만큼 자신을

잘 표현해주는 작품이 없었다고 한다.

 

 

감독 김기영이 윤여정을 캐스팅한 이유

그 당시의 윤여정의 마스크나 외적 조건으로 보면, 그 당시의 인기 배우들의 이미지와는

너무 상당히 달랐고, 고전성과는 거리가 멀고 개성이 강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기영은 고전성에 벗어나 새 시대의 가치관을 대변할 수 있는 배우를 찾으려 했다.

즉, 영화에 정확하게 부합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윤여정을 캐스팅한 것.

김기영이 윤여정을 캐스팅할 당시 특이한 수법을 썼다고 한다.

 

감독 김기영

"저랑 계약을 하려면, 저랑 몇번씩 만나야 돼요."

 

그래서 윤여정도 역시 너무 황당했지만 일단 캐스팅 수락은 했다.

그래서 매일 다방, 카페, 식당이나 이런 곳에서 신변잡기나 영화 얘기를 하다가

헤어지는 반복된 만남을 했다고 한다.

 

감독 김기영(그 후 영화 촬영하는 날) 

"며칠 전에 저하고 식당에서 만났을 때 그때 웃었던 표정 한 번 지어봐요."

 

표정과 사소한 습관을 관찰하면서 연기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김기영만의 독톡한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영화 도입부 부분에 한국 근대 건축을 상징하는 건축가 김중업의

대표작인 삼일빌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친구

"서울에 가면 31층짜리 빌딩이 있다더라"

 

윤여정

"떨어져 죽기 편하겠다"라고 대답하며 웃음을 짓는다(...)

 

 

집주인과 윤여정과의 첫만남

서울에 상경한 윤여정은  직업소개소에서 집주인과 윤여정은 만나게 됩니다.
먹고 재워주는 대신 좋은 곳에 시집을 갈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약속과 함께 

집주인과 동거를 하게 됩니다.

지금의 가사돌보미 옛날 말로 하녀로 취직하게 된다.

 

 

윤여정 옛 시절 성폭행에 대한 기억
성폭행에 대한 기억과 내적인 욕망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으면서
손이 오그라드는 증상과 함께 성욕과 마음의 상처를 보여준다.

양계장 부부의 애정 장면을 훔쳐보며 윤여정은 심하게 몸을 비꼬며

손이 오그라드는 연기를 선보인다.

 

 

사건 시작
집주인(남궁원)은 대중가요 작곡가이고 안주인은 양계장을 운영을 합니다.

윤여정에게 양계장을 소개하는 안주인은 양계장을 들어설 때 문을 두두리며,

닭조차도 노크를 하고 들어가야  자궁이 파열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한다.
닭과 양계장은  이후 펼쳐질 사건들의 중요한 다른 장소 가 됩니다.

양계장의 닭모이를 만드는 믹서기가 살인의 도구가 되는....

 

 

사건 전개

양계장 주인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집을 비우게 되는데 
남편 주변에 있는 여자들이 남편에게 접근할수 없도록 해달라는 
당부를 받게된 하녀인 윤여정은 가수 지망생이 집주인에게 접근을 하자 

짖굳게 방해를 하며 두사람을 갈라 놓게 된다.
어느날 술에 취한 집주인은 가수 지망생으로 착각을 하고 윤여정을 겁탈하게 되면서 
윤여정은 집주인 남편과 잠자리를 하게 됩니다. 

김기영 감독은 창문과 나비 그라인드 장식을 이용하거나 흐릿한 거울을 이용하여 

야릇한 남녀간의 사랑을 묘사합니다.  

 

 

극중 윤여정의 성격 

순수한줄 알았던 윤여정이 콩나물을 사러 갈때 악착같이 콩나물 빼앗듯

집어 넣는 모습과 시골에서 자란 탓인지 쥐는 너무 쉽게 만지고 쥐를 가지고 놀며

질겁하는 안주인에게 짖꿎게 장난을 치더니 쥐를 짚밟아 버리면서 엽기적인 그녀가 됩니다.

 

 

 

삼자대면
두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알게 된 양계장 주인은

세사람이 함께한 자리에서 남편 남궁원에게 회유를 하게 되고, 
윤여정은 안주인에게 무시당하며 미움을 받으며 집안에
애물 단지로 전락하게 되면서 자신과 주변 인물들에게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안주인과 대립하게되는 윤여정은 집주인 남자를 차지하고 싶다는 욕망도 표출된다.

현모양처럼 보였던  안주인도 남편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짓도 할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여성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  극단적 선택을 통해 남궁원을 소유하고자 한 화녀  윤여정
    자신과 죽음을 함께하자고 유혹하는 윤여정에 넘어가는 남편 남궁원
  • 세 남녀의  집착과  질투의 화신과 같은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  

 

개봉 당시 1971년과 다른 문화적인 요소

현재의 서울에는 없는 로케지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창경원.

재개봉된 2021년 시점에는 서울로7017로 변모한 서울역 고가도로의 과거 모습도 볼 수 있다.

명자가 쥐를 들어보이며, 시골에서 쥐를 많이 잡았다고 하는데, 이는 1970년 당대에 정부에서

장려한 '쥐잡기 운동'에 대한 것이라, 2021년 시점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살해 방법으로 쓰인 것이 쥐약인데, 2021년 현재 시점에도 그다지 먹으면 건강에 좋진 않은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1970년의 경우는 쥐약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쥐약=극약'이라는

등식이 서있던 시점이라, 지금의 쥐약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독했다.

마치 재개봉 시점인 2021년의 그라목손이나 청산가리와 같은 위상의 영화 장치로 봐야 한다.

 

 

영화감독 봉준호가 추천했던 작품 중 하나이다.

하녀와 화녀 82'도 포함된다.

 

양계장의 사료 분쇄기에 납치한 여자를 갈아넣어 닭 먹이로 만드는 내용이 나오는데

1979년 김형욱 실종 사건이 일어난 후 2005년 양계장 닭모이설이 돌면서

이 영화와 비슷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이 설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화녀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09년 영화 실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3. 흥행 및 수상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흥행에도 성공했는데, 23만 명의 관객을 모아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윤여정이 이 작품을 통해

대종상영화제의 신인상과 청룡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제4회 시체스 국제영화제에도 출품되었고,

윤여정은 여기에서도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제 10회 대종상 영화제(1971)

  • 신인상 (윤여정)
  • 촬영상 (정일성)
  • 편집상 (김희수)
  • 조명상 (양찬종)

 

 

제 회 백상예술대상(1972)

  • 영화부문 기술상 (정일성(촬영))

제 15회 부일영화상(1972)

  • 우수신인상 (윤여정)
  • 촬영상 (정일성)

제 4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 영화제(1971)

  • 여우주연상 (윤여정)

제 8회 청룡영화상(1971)

  • 감독상 (김기영)
  • 여우주연상 (윤여정) 
  • 여우조연상 (전계현)
  • 주제가상 (한상기)
  •  

 

'화녀'로 청룡상, 대종상, 시체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은 이 작품이 데뷔작이었다.

당시 신인이었던 윤여정의 충격적인 팜므 파탈 상은 신선하고 새롭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어 '충녀', '어미' 등에 출연하며 독특한 캐릭터를 갖게 된다.

 

 

2021년 재개봉

2021년 윤여정의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여우조연상 수상 쾌거와 함께

국내 극장가에서 윤여정의 작품 인생을 회고하기 위해 재개봉되었는데,

개봉 당시의 원본은 유실되어 국제영화제 출품용으로 제출된 프랑스어 자막본이 유일하여,

극장에서 감상할 당시에는 프랑스어 자막을 어쩔 수 없이 같이 봐야 했었다.

또한 시작과 동시에 디지털 복원 작업을 하였으나 화면이 고르지 못하다.

하지만 결국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이후, 윤여정의 자타공인 대표작이 된 만큼,

제대로 복원해야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자막 제거 버전이 VOD로 공개되었다.

4. 김기영 감독 ‘하녀 시리즈'

하녀 명자의 스크린 등장은 한국영화사 여성상의 변화를 뜻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녀는 겁탈당하고도 좌절하지 않았고,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심에서도 주눅 들지 않은 당찬 여성이었다.

'하녀'로부터 10년 후, '화녀'에 이르러 김기영 감독은 변화하는 시대 속 변화하는 여성상을 그려낸다.

파격적이고 스타일리시한 김기영 감독의 독창적 에너지가 한껏 고조되는 가운데,

당시 스크린 데뷔를 한 새로운 기운의 배우 윤여정의 에너지가 만나 이룬 최상의 합이다.

 

■ 김기영 감독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하녀 시리즈

  • '하녀'(1960)
  • '화녀'(1970)
  • '화녀 82'(1982)의 두 번째 작품
  •  

 

'하녀'와 이야기의 틀은 거의 유사하지만, '하녀'보다 더 기괴하고 상황보다는

심리적 파국이 강조되는데 , '하녀'가 신문을 읽고 사건을 상상했던 김진규의 모습으로 끝나면서

일면 봉합하는 내레이션으로 끝난 반면, '화녀'는 수사진이 사건을 탐문하는 것으로 시작해

사건의 해결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다 대중적인 얼개를 지니고 있다.

양계장의 닭들은 중산층 가족의 경제를 유지해주는 조건이면서 동시에 명자와 관객들을

기괴한 심리상태로  몰아가는 배경으로 작동한다. 중산층 가족이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은

결국 모두가 정상성을 벗어나게 만들며,  시골처녀를 착취하려던 중산층 가족은 그녀를 들여놓음으로써

오히려 파멸에 이르고 만다.  김기영 감독은 직접적인 방식보다는 표현주의적이고 심리적인 방식으로

한국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발생한 중산층이 실제로는 얼마나 억압적이고 기괴한 상태에

있는지를 비틀어진 욕망들을 통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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