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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양정화 , "한국연예계 역사를 바꾼 대형스캔들로 희생된 탑미녀배우 천문학적인 위자료를 받고 사라진..."

 

1970년대 초반 혜성처럼 등장해 선풍적 인기를 모으다 대형스캔들로 한방에 추락해,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1억5천만원(지금 물가로 500백억원??)의 소송을 해

대형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한 뒤 홀연히 은퇴한 여배우가 있다.

한국연예사 통털어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 열손가락 안에 드는 배우 양정화이다.

비운의 스타였는지 아니면 천문학적인 위자료를 받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선택해

미국으로 홀연히 이민을 간게 어쩌면 행운인지 여러분이 알아서 판단하시길 바란다.

당시 물가로 1억 5천이면 사실상 한국역사상 전무후무한 최대 위자료라고 하며

앞으로도 나올 일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세미인이었으며 큰 인기를 모으던 절정기에 어이없는

사건에 휘말려 각각 20대 중반 혹은 30대 초반이라는 너무도 때이른 시기에 은퇴해

아련한 기억 저 편으로 사라져 버린 배우 양정아에 대해 알아보자.

 

1. 배우 양정화  프로필

출생 1951년 (73세)  서울특별시

신체 161cm, 45kg 

활동 기간 1970년~

은퇴일 1978년

 

1970년 MBC 공채 2기로 입사

양정화는 갓 고교를 졸업하던 70년대 초반 MBC 공채탤런트 선발에 응시해 뽑힌다.

 

1972년 김수현 작가 초기힛트작 `새엄마`

윤여정과 함께 김수현작가의 초히트작 새엄마에 출연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다.

 

1973년 MBC 드라마 '춘향전' 공모전에 당선 타이틀 성춘향 역을 맡아 본격 질주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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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양정화 프로필 - "한국연예사 통털어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

한국연예사 통털어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 열손가락 안에 드는 배우이며 1970년대 초반 혜성처럼 등장해 선풍적 인기를 모으다 대형스캔들로 인해 홀연히 사라진 비운의 여배우 양정화에 대해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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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한국영화계

당시 한국영화계는 충무로를 먹여살리던 문희 ,남정임 ,윤정희 일명 1대 트로이카 군단이

결혼과 유학 등으로 한꺼번에 은퇴하게되 위기탈출을 위해 영화사들은 저마다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신인공모전을 통해 트로이카의 계보를 이을 뉴페이스 발굴하게 된다.

 

배우 양정화 등장

유별나게 튀는 미모와 두드러진 현대적 감각, 그리고 청순미와 관능미가 묘하게

어우러진 분위기로 단연 독보적 두각을 드러낸 게  바로 이 양정화이다.

 

1974년 영화 '흑녀' 정소영 감독

브라운관에서 활동하다 스크린 러브콜을 받아 영화 `흑녀`로 은막데뷔를 하게 되는데,

홍콩에서 로케된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드문 여성액션물로 아름다운 용모인 그녀가

액션을 하는 모습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흥행에 성공한다.

1974년도에는 경향신문에서 최고의 스타로 뽑힐 만큼 엄청난 인기를 과시했다.

이제 한두 작품만 더 성공한다면 그녀에게 여배우 정상 등극은 시간문제였지만

'박동명 스캔들'이 크게 터지면서 은퇴를 하게 된다.

 

2. `박동명 스캔들`

 

1975년  '박동명 사건'

호사다마라고 막 인기정상에 설 무렵 지금도 회자되는 `박동명 스캔들`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당대의 엽색 스캔들인 박동명 사건에 연루되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어 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효자문에서 강제하차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신** 창업주의 2세이자 태광산업의 30대 초반 젊은 사장이던 박동명씨가 외화밀반출 혐의로

그의 자택에서 구속 되었는데 검거 당시 현장에 신인여배우 강**가 함께 있다 발각된다.

 

 

 

박동명은 재벌 2세로 여배우와 여대생을 농락하는 희세의 카사노바였다고 한다.

이걸 필두로 그의 여배우 편력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남 그의 수첩에 무려 수십명의

여자연예인들 명단과 연락처가 있었고 그와의 교제 염문 동거사실이 드러난 수많은

여배우가 된서리를 맞아서 그 당시 무려 13명의 여배우가 배우협회에서

제명 당하거나 강제퇴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이 중 누군가는 출연작에서 강제하차 되는가 하면 연루된 여배우 최정민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약을 먹고 음독자살을 시도해 연예계와 사회 전체가 술렁인다.

 

 

중앙일보에서 양정화와 박동명과 함께 찍힌 사진 보도

중앙일보에서 양정화와 박동명과 함께 찍힌 사진을 공개하는데,

물적 증거가 없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양정화는 공개된 사진으로 인해 가장 큰 세간의 집중비난에

시달리게 되며 여주인공으로 출연 중이던 드라마 '효자문'에서 하차당해

결국 후배연기자 안재은이 대타를 맡아 종영까지 가게되는 해프닝이 발생된다.

 

세간의 집중비난을 받게된 양정화

그저 발뺌으로 일관한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양정화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게 되면서 박동명의 애인이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된다.

 

당시 대중들 반응

`함부로 놀아난 주제에 자숙하고 있을 것이지 뭘 잘 했다고 저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양정화

`난 그를 알지도 못 한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결국 박동명씨와 뜨거운 사이라고 추측성 보도를 한 중앙일보를 고소하게 된다.

 

 

양정화 중앙일보 명예훼손으로 고소 (1억 5천만원)

이에 굴복하지 않은 양정화는 이에 분개하여 명예훼손으로 해당 신문사에

대해 1억 5천만원의 고소를 했고 결국 그녀의 무고함이 밝혀지게 되는데,

문제의 사진이 조작인 것도 그렇지만 당시 수감자 신분이던

박동명씨가 법정증인으로 등장해

`난 양정화란 여자를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 한다`

라고 진술하며 결국 양정화의 결백이 증명된 셈이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여 승소하게 되면서 여론은 그녀에게 동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재판 결과의 완전한 대반전

여기에 문제의 언론사가 왜 그녀를 그렇게 집중공격했는지 사건전말이 드러난다.

사실 양정화는 박동명씨와 아무런 사이가 아니었고 실제로 마주친 건 산악행에서 스치듯

한번이 전부였다고 한다. 문제의 사진은 그녀가 신인이던 시절, 동료들과 설악산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때마침 현장에 온 박동명씨 일행과 단체기념사진을 즉석에서 찍은 것 등산현장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이들 대부분이 그렇듯 둘다 따로 소개를 주고받거나 대화없이 곧바로 각자 길을

갔는데 언론사가 이 사진을 마치 이 둘만 커플기념샷으로 찍은 것처럼 교묘히 위장해

그녀를 이상한 여자로 오인하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중앙일보 음모

이 당시의 연예계는 하나의 방송사와 연예인과 계약을 하면 그 연예인은 자신이 계약한

방송사에만 출연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 당시 양정화는 MBC 출신으로, MBC와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이었다. 이런 유망주를 눈여겨본 TBC는 양정화와 전속계약을 맺으려 했으나

양정화는 MBC에 남으려 했고 TBC는 양정화에게 앙심을 품게 된다.

TBC와 같은 계열사인 중앙일보는 양정화와 박동명이 등산을 간 사진을 유포해 버렸는데,

실제로는 양정화가 박동명과 단둘이 등산을 간 것이 아니었다.

그 사진은 양정화가 신인 시절 단체 등산을 갔을 때 박동명도 우연히 끼이게

되었는데, 당연히 둘은 일면식도 없는 상태였다. 

이 때 찍은 사진을 잘 조작하여 마치 박동명과 양정화가 데이트를 한 듯한 장면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중앙일보가 그렇게 한 이유

당시나 지금이나 국내 최대재벌의 대명사인 기업이 운영하던 구TBC 동양방송사는

그 시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양정화를 자신들의 전속배우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은 방송사 전속제도가 아주 엄격하던 시대로 MBC연기자면 오로지 MBC에서만 활동 가능

이런 식으로 전속된 방송사에서만 활동이 가능했는데 양정화가 큰 인기를 모으고 그러는 사이

MBC와의 전속계약기간 종료시점도 다가오자 경쟁방송사인 동양방송에서 영입하기 위해

사건 직전의 그녀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스카웃을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을 키워준 방송사와의 의리를 져버리기 싫었던 그녀는 제의를 결국 뿌리쳤고

이에 일명 `괘씸죄`를 적용, 박동명씨 사건이 터지자마자 문제의 사진을 입수해 인신공격성

보도를 퍼부어 그녀를 바닥까지 추락시키게 된다.

 

중앙일보의 악의적인 보도

중앙일보는 당시 악의적인 보도를 집중적으로 했는데

이 신문사가 바로 해당방송사와 사주가 같은 계열사

 

양정화 중앙일보로 부터  1억 5천만원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

해당사로부터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받는데 이 금액이 정말 엄청남 무려 1억 5천만원인데

그 시절 이 금액은 서울 시내 중심가 고급단독주택 20여채 이상을 살 수 있는 엄청난

천문학적 거액이라고 한다.

 

1975년 당시 물가

사건이 일어난 시점인 1975년 당시는 아파트 대중화와 강남개발 이전 시점으로

서울 대표 부촌이 중구였으며 여기 쓸만한 양옥새집 한채가 35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 소주 1병당 100원
  • 자장면 한그릇이 140원
  • 버스비가 40원 정도
  • 대학등록금이 87000원
  • 주택복권 1등 500만원(당시 최고액 당첨복권)

양정화가 받은 금액은 당시 이 복권을 무려 30장 연속 1등 당첨 그것도 세금 한푼

안 떼야 받을 수 있는 돈이라고 하는데 , 당시 1억 5천이면 사실상 한국역사상

전무후무한 최대 위자료로 앞으로도 나올 일 없을 것이라고 한다.

 

 

역시 재벌은 통이 커!

이 사건에서  역시 재벌은 통이 컸다는 것이다.

후문에 따르면 실제 위자료로 그녀에게 지불한 액수는 제시한 1억 5천보다 더 높으며

이들이 발빠르게 대처한 덕분에 언론사가 철퇴를 안 맞았다고 함다.

양정화의 무고함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여론의 화살이 얌전히 연기 잘 하고 있는 참한 여배우를

난도질해버린 중앙일보 쪽으로 옮겨가 엉터리 언론이 엄한 사람 잡았다는 의견이 일게되면서

이 신문사는 창간 이래 최대위기를 맞게 되지만 그래도 위기를 잘 모면한 배경은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양정화에게 백배사죄 그리고 그녀가 요구하는대로 피해보상을 얼른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여기 사주가 홍씨지만 이 때는 이씨 일가였다고 한다)

순조롭게 돈으로 위기타파 하게되는데 , 만일 이 신문사가 우리는 잘못없다 배째라식으로 나왔다면

아마 폐간위기 갔을지도 모른다는 게 그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의 설명이다.

요즘도 일명 `옐로우 저널리즘`으로 대변되는 추측성 억측 과장 허위보도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이 등장하는 세상인데 저런 거 보면 그 때는 더 했던 것 같으며

덕분에 참 아까운 인물 하나 허망하게 날려버린 셈이 된 씁쓸한 사건 아닐까 싶다.

 

 

총칼보다 펜이 무섭다

어쨌건 인정할만한 점은 언론의 힘이 막강했고 , 여배우 위치가 지금 같지 않은 시대에

그렇게 대놓고 언론사와의 소송전을 불사한 점은 아마 사상최초였으며 용감했고

아마 지금 나왔으면 승소 후 기자회견 하고 복귀했을텐데...

아직도 올드팬들 사이에서 그녀는 24세 꽃다운 나이의 처녀로만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론의 마녀사냥에 희생돼 상처만 입은 채 홀연히 사라진 양정화

이 사건의 팩트 총칼보다 펜이 무섭다는 건 진리이며 언론이라는 이름의 잘못된 보도 하나가

엄한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단적으로 증명해준 희대의 사건으로 속칭 찌라시들

손가락 함부로 놀리면 절대 안 되며, 그러다 천문학적 배상할 일 생길 수 있다라는 교훈이다.

 

 

승소후 양정화

이런 소송승소로 평생 먹고 살 돈을 받게 된 양정화는

결백이 밝혀진 후 영화사들도 앞다퉈 캐스팅제안을 하게 됐고 온갖 섭외가 줄을 잇게된다.

 

1976년 이후 은퇴 선언

1976년 복귀 선언

여러 출연 제의가 들어왔지만 망설이다 MBC의 끈질긴 설득에 3년 만에

'113 수사본부'에 얼굴을 비추는 등 활동을 재개할 준비를 하였다.

1978년 '당신'의 후속극인 일일연속극에 출연하려고 하였지만,

드라마  촬영을 앞둔 상태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1978년 은퇴

박동명 사건이 터졌을 때, 양정화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었다.

연예계의 생활에 환멸을 느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함께 조용히 가정을 꾸리기 위해 은퇴를 선택했다고 한다.

 

양정화

`너무 큰 상처를 받고 회의감을 느껴 다시는 카메라 앞에 서기 싫다`

는 소감을 남긴 채 그 길로 은퇴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버린다.

 

 

 

2019년 MBN '모던 패밀리' 양정화 최근 근황

40여년 만에 근황을 알리게 되는데, 결혼도 하고, 아들을 낳고 알콩달콩 미국에서 잘 살다가

3년전 남편과 사별했고 , 이제는 어느덧 두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다고 한다.

 

 

3. 양정화 은퇴의 여파

나비효과

그녀의 은퇴는 나비효과를 일으켜 장미희, 정윤희를 그녀의 뒤를 잇는 스타로

만드는 데에 기여하게 된다.

 

박동명이가 골로 보낸 인생들

그 당시 연예인으로 활동하다 사건에 연루된 여인들은 대부분 하차하거나 사라졌고

일부는 지금도 활동 중이지만 사건 후유증 때문인지 에로물 전문 혹은 삼류로 밀려나거나

방송진행 등 다른 길로 빠졌다고 한다.

박동명이 자택에서 구속 당시 같이 있다 연행된 강경희는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연예계 역사를 바꾼다.

강경희씨는 당시 충무로에서 대하물로 기획된 `청춘극장`의 여주인공 오유경 역 공개모집으로 선발된 인물이다.

청춘극장은 이전에 이미 두차례나 영화화 된 적 있으며 각각 `김지미` `윤정희`가 맡아 스타덤에 오른 적이 있다.

자연 이번 역할 맡을 신인도 기대를 모았는데 이 강경희씨가 역할에 캐스팅 되고 대본리딩까지 들어간 상태에서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역에서 하차를 당함 다급해진 영화사는 황급히 대타를 찾게 된다.

 

정윤희 데뷔작

당시 막 데뷔했지만 데뷔작 흥행참패로 조용히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던 신인이 투입되는데

이 여배우가 바로 전설의 한국영화사 대표미녀인 `정윤희` 정윤희는 데뷔작인 영화 `욕망`의

실패로 무작정 차기작을 기다리는 무명신인이었는데 때마침 이 영화를 본 청춘극장 조감독이

수소문해 대타로 기용했고 청춘극장으로 인해 정윤희라는 걸출한 인물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인생대역전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청춘극장' 오유경 역

정윤희는 이 때 팔자를 바꾼 것인데, 이 오유경 캐스팅 이전에는 부산에서 갓 상경한

무명의 배우지망생 중 하나였다가 이 역할로 이름과 얼굴을 알리고 이 영화를 본 방송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당시 가장 잘 나가던 방송사 TBC 특채에 해태제과 전속모델 발탁 등

경사가 줄지어 날아드는데 , 한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정윤희 바로 직전 해태제과 전속모델이

다름아닌 양정화였다는 사실 역시 이 오유경 역은 스타등용문이고

`누군가의 행운은 타인의 불운을 밟고 올라서는 기회의 산물`이라는 외국속담이 진리인가 보다.

강**씨가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그 역할 그대로 했다면 정윤희는

좀더 늦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거란 사실이다.

 

 

퇴출된 배우 강경희

단아한 동양적 미모에 균형잡힌 몸매를 지닌 가능성 있는 배우였다고 한다.

사건여파로 데뷔도 못 해보고 그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영화 '겨울여자' - 대타 배우 장미희

승소 이후 그녀에게 들어온 영화작 중의 하나가 바로 '겨울여자'였다.

겨울여자는 원작의 파격적인 내용으로 인해 흥행은 따놓은 당상이었는데,

영화 '겨울여자'는 자신 때문에 죽은 남자 때문에 명문 여자대학교의 재학생이 성적으로

개방적인 여자로 변한다는 내용이었지만 양정화는 은퇴 과정에서 이를 거절하게 된다.

당시 TBC 출신의 신인 여배우 장미희가 맡았다.

겨울여자는 당시 서울의 단성사에서만 58만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대박을 터뜨리며,

장미희도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이후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영화 `겨울여자` - 김호선 감독

조해일 원작 ,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

한 여인의 성적 일탈과 여러 남자를 거치면서 겪게 되는 성장기를 묘사한 연재소설로

일간지에 게재돼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동명의 소설을 영상화한 이 영화의

여주인공 유이화 역은 당시 충무로 모든 여배우들이 탐내었다고 한다.

제작사는 이 역할을 양정화에게 맡기려 했지만 이미 은퇴를 결심한 그녀는 단호히 거절,

결국 무명신인 장미희가 이 역할을 맡아 국민여배우의 첫걸음마를 떼고 초유의 힛트작이 되며

2대 트로이카 시대 개막을 선언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1977년 서울 단성사 단일개봉관에서 개봉돼 58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이건 그 당시 한국영화사상 최고흥행으로 이 기록은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 등장 할때까지

무려 13년간 기록갱신이 되지 못 했다고 한다.

멀티플렉스 극장 시대인 지금 시점에선 우습게 들리는 이 관객 숫자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무려 4개월 넘게 극장좌석이 단 한곳도 비지 않았으며 이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몰려든 관객이 단성사 앞에서 종로 2가 비원까지 연일 장사진 행렬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걸 만약 양정화가 찍었다면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엄청난 작품을 놓치고 언론의 마녀사냥에 희생돼 상처만 입은 채 양정화는 홀연히 사라진다.

 

 

국내 연예계 판도를 바꾸다

여자들의 경우 남자를 돈이나 겉모습만 보고 잘못 만났다간 인생 골로 갈수 있다는 걸

박동명 사건이 증명함으써 사건은 결국 국내 연예계 판도를 바꿔놓았다.

양정화 강**모 여배우 2명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울렸고 이 사건으로 어이 없게도

김자옥 정윤희 장미희는 뜻하지 않은 수혜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3명은 희생양 덕분에 기회를 잡은 셈이니까.

 

 

2대 트로이카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그리고 박동명씨 사건으로  연루된 여배우들의 대거 동시퇴장으로 그 이름도 찬란한

2대 트로이카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가  기지개를 켜게 되었다고 한다.

박동명씨라는 젊은 재벌 2세 한명 때문에 여러 인생이 한꺼번에 골로 가고

또 국내 연예계 판도를 대폭 바꾸기도했으니 이것도 일종의 나비효과인 셈이다.

 

 

 

브라운관 그녀들이 충무로로 간 까닭은...

당시만 해도 스크린과 안방극장은 서로 별개였다고 함 즉 영화배우들은 영화만 찍고

방송연기자들은 드라마만 줄곧 찍었는데 이 박동명씨 사건이 이런 판도를 뒤엎게 된다.

그 이유가 스크린 여배우들이 그것도 히로인을 전담하는 젊은 20대 여배우만 골라서

한꺼번에 10여명 넘게 활동정지를 당하게 되니 충무로는 당연히 제작에 초비상이 걸리게 된다.

그래서 등장한 방법이 방송연기자들 대거기용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안방에서만 활동하던

김영애, 김자옥 ,박원숙 등이 이 때부터 스크린 겸업을 시작하게 된다.

 

 

박동명 석방후 

희대의 여배우킬러이자 나비효과를 선보인 그 엽색가이자 방탕한 인물의 전설이 된 박동명씨

그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석방된 후 몇년 안 있다가 또 대형사건을 일으키게 되는데,

마약을 복용한 환각상태에서 자신보다 20살이나 어린 여성과 호텔에 투숙, 여성을 식칼로 위협

몇시간동안 폭행감금하고 인질극 소동을 피워 또 구속돼 9시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

이 사진이 인질극 구속 당시 뉴스데스크에 대문짝만하게 그의 중년시절 얼굴 잡히게 된다.

아마 인간 자체가 완전 밑바닥이였던듯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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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양정화 프로필 - "한국연예사 통털어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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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등용문이였던 '오란씨 광고모델' 윤여정,신은경,채령,김지원,김윤희,음정희등등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러운 눈동자여 오, 오, 오, 오 오란씨" 우리들 어렸을대 추억 처럼 남아 있는 듣기만 해도 따라 부를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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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영화 《밤에도 뜨는 태양》주연 배우 양정화,김진 ,남궁원

1974년에 개봉한 영화 《밤에도 뜨는 태양》에 대해 알아보자. 주연 배우는 양정화,김진 ,남궁원이였는데 나름 히트한 영화라고 한다. 1. 영화 《밤에도 뜨는 태양》 기본 정보 영화 《밤에도 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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