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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독고영재 근황 "사업 실패, 삶 포기하려 했다 내 애들 고아될 뻔했다"

독고영재 獨孤永宰

2023년6월 19일 저녁 8시 20분  tvN STORY ‘회장님네 사람들’

탤런트 독고영재가  ‘회장님네 사람들’에 출연하면 최근 근황을 알려왔다. 

3대에 걸쳐 이어진 배우 가족 독고영재의 이야기 속으로 슝~~!

 

마이웨이 독고영재
마이웨이 독고영재

1. 독고영재 프로필

 

본명 전영재 (全永宰)

출생 1952년 12월 13일 (현재나이 70세) 강원도 강릉시

(실제 생년월일 1952년 12월 13일)

1953년생으로 알려졌지만, 같은 연예인 2세 박준규가 2006년 당시 상상플러스에서

독고영재가 실제 나이는 이덕화와 같은 1952년 생 동갑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즉, 박준규 본인과 띠동갑. 1952년생 이계인과도 50년간 친구로 지내고 있다.

사실 60년대 이전에는 주민등록이 1년 늦은 케이스가 흔했다.

 

본관 정선 전씨

종교 불교

소속사 아이티이엠

데뷔 1973년 영화 '빗방울'

 

학력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2][3] (13회 졸업)

동대부고는 연지동에 있어서 교문을 나서면 바로 대학로였다.

언론에서는 배명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

 

가족

아버지 독고성

어머니 박길자

자녀 아들 독고준

딸 전지은

 

첫번째 부인은 20대에 결혼해서 젊을때 일찍이 이혼했다.

매스컴에 알려진 자녀들도 첫번째 부인의 자녀이다.

 

두번째 부인 1994년 결혼

독고영재는 당시 나이 50대에 16세 연하와 두번째 결혼을 했다.

 

독고영재 재혼한 아내 16살 연하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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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우 독고영재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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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독고영재

"사춘기가 고등학교 때 조금 늦게 왔는데, 반항심으로 어머니와 함께 죽을 뻔한 적이 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내가 아는 얘기만 해서 수업이 시시하다고 느껴져서 오전 수업만 받고

마음대로 하교를 했다, 친구 자취방에 가서 놀거나 동네에서 싸움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곤 했다"

 

동치미 독고영재
동치미 독고영재

독고영재

"그런데 하루는 어머니가 너 그렇게 사람 구실 못할 거면 나하고 죽자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알약을 40~50개 정도 주셨다, 나도 반항심에 그래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먼저 약을 드신 후 이불 위에 누우시더라. 그래서 나도 약을 먹고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이상해서 일어나 살펴보니 어머니가 연탄불까지 피워 두었더라 ,

작은 아버지가 창문을 깨서 어머니와 나를 구하셨고, 그날 이후로 모범생 독고영재로 거듭났다,

사춘기 시절 내 반항심은 아버지 故 독고성의 관심을 받기 위함에서 시작됐다"

 

아버지 지인들과의 어려운 자리를 갖고 , 남산 드라마 센터에 시험을 보게 되다.

독고영재

아버지 인맥이 제 운명을 바꾸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배우의 꿈을 꾼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착실히 공부해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가 기자가 될 생각이었다.

원서 준비까지 다 했었는데, 아버지의 인맥으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아버지 같은 분이 계신데 감히 어떻게 연기를’ 그렇게 생각했어. 

우리 동네가 워낙 험악해서 난 쌈질을 무진장 했어. 

하루는 아버지의 친구 분이자 배우 故박암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나를 서울예대의 전신인 ‘남산 드라마 센터’로 데리고 가서

극작가 겸 연출가인 동랑 故유치진 선생님을 소개시켜주셨다."

 

동치미 독고영재
동치미 독고영재

 

아버지 친구 박암 선생님

‘나랑 어디 좀 가자’

 

 

독고영재

"따라간 데가 남산 드라마센터였어.  좀 있다가 들어오신 분이 동랑 유치진 선생님.

고등학교 때 문학동아리 같은 데서 유치환의 '깃발' 같은 걸 낭송했는데

두 분이 형제잖아. 전설 같은 분이시지. 고등학교 때 장난하고 다닌 걸

아버지를 통해 아셨다.  그러니까 배우를 시키자고 한 것 , 싸움만 하고 다니던

나를 타이르기 위해 친구 분들을 부르신 거다 "

 

 

 동랑 유치진 선생님

‘야아, 너 깡패라며?’

 

 

독고영재

‘깡패 아닌데요.’

 

 

 동랑 유치진 선생님

‘니 아버지도 만날 깡패 역할만 하는데, 너도 깡패 아냐?’

 

 

독고영재

‘깡패 아니고요’ 하는데

 

 

동랑 유치진 선생님

‘야, 너 연기해라. 싸울 정열이 있으면 연기해

 

열정이 많은 애들은 배우를 시켜야해' 

 

 

독고영재

‘저는 연기를 상상도 해본 적이 없어요’ 

 

동랑 유치진 선생님

'그럼 뭐 될래?’ 

 

 

독고영재

‘기자하고 싶은데요.’

 

 

 

동랑 유치진 선생님

‘어느 대학 가려고?’ 

 

독고영재

‘중대 신방과나 정외과.’ 

 

동랑 유치진 선생님

‘그러지 말고 연기해.’

 

 

독고영재

‘연기를 어디서 해요?’

 

 

동랑 유치진 선생님

‘여기 학교 있다.’

 

 

독고영재

‘어디에요?’

 

 

동랑 유치진 선생님

'여기가 서울연극학교야."

 

독고영재

"난 거기가 극장인 줄 알았는데 학교래.

무슨 대학은 들었어도 연극학교는 처음 들었어."

 

 

박암 선생님

‘야, 인마. 선생님 말씀 들어.’

 

 

독고영재

‘네, 알겠습니다’

 

 

박암 선생님

‘너 할아버지랑 약속한 거 지켜라.’

 

 

독고영재

‘예, 알았어요’  그랬거든.

내 성격이 약속하지 못할 거면 ‘어 그거? 나중에 이야기해’ 그렇게 돌려버려.

근데 일단 약속을 하면 무조건 지켜야 해. 동랑 선생님한테 ‘예’ 한 게 부담이 되는 거야.

내가 이걸 안 지키고 중앙대 정외과를 가면 얼마나 실망할까? 에이, 모르겠다.

해보다가 그만두지, 뭐.  남산 드라마 센터에 학교가 있는 줄 몰랐는데 얼떨결에  

시험을 보게 됐다.  그때 일을 계기로 배우가 됐다

 

그래서 결국 남산드라마센터를 다니기 시작했어.

집에는 중대 됐다고 하고. 어머님은 내가 중대생인 줄 알았어.”

 

 

동랑 유치진 선생님

“한 달 정도를 다니는데 말도 안 되는 거야. 캠퍼스도 없지 내가 상상했던 대학교가 아니야.

그래서 학교를 안 나갔더니 학교에서 집으로 연락을 한 거지.

아버지는 아들이 연기하는 건 바라지 않으셨어. 워낙 고생하셔서.

근데 이렇게 된 걸 어쩌겠어. 난 좀 더 다녀보고 정 안 되면 옮기겠다고 했지.

연기도 그 나름대로 재미있더라고. 1학년 말에 '제17포로수용소'라고 연극의 주연을 맡았어.

그걸 어떤 영화감독이 보러왔다가 영화 하라고 꼬시더라고. 안 한다고 했지.

며칠째 와서 그러기에 얼마 주냐고 물었더니 30만원이래.

그때 한 학기에 학교에 내는 돈이 5만9000원인가 했으니까 큰돈이었어.

당시에는 계약서도 없어. 구두야. ‘하는 거지, 하는 거지?’ 하더니 10만원을 먼저 턱 주는 거야.

그게 평생 따라다니는 '빗방울'이라는 데뷔작이야.”

 

아버님한테 걸렸던 첫 영화

“영화 찍다가 보니까 아는 제작부장들이 너무 많아서 결국 아버지 귀에 들어갔지.

또 어쩌겠어. 아버지가 영화 찍으려면 나랑 몇 가지 약속을 하자고 그러시더라고.

‘영화배우랑 연애하지 마라. 결혼할 생각도 마라.’ 나야 뭐 안 하면 그만이지.

그리고 아버지는 그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해주셨어. 미8군 트럭운전사로.

난 그 트럭을 갈취해서 물건을 팔아먹는 역할인데 운전사를 때려서 기절시켜야 했어.

나중에 그 영화로 난 은곰상 신인남우상을 탔지.”

 

화려하게 데뷔후 영화를 더 이상 찍지 않다

“어느 날 동랑 선생님이 날 부르더니 ‘야, 너 순수예술 하는 놈이 왜 상업예술을 해?’

그러시는 거야. '빗방울'이 신문에 나니까 아신 거지. 그분한테는 영화는 상업,

연극은 순수예술이었던 거지. 난 무조건 죄송하다고 빌었어.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고,

이것만 하고 안 할 거라고 아버지랑 약속도 했다고 말했지.

내가 동랑 선생이 아니었으면 1973, 1974년도에 방송으로 가버렸을 거야.

(이)덕화 갈 때, 덕화가 같이 가자고 했거든.

난 그 후 대못을 주워다 돌로 두들겨 펴서 한 자루를 선생님한테 갖다 드렸어.

그 양반은 늘 세트 박을 때 쓰는 대못 버리지 말고 아끼라고 했거든.

그리고 당신이 돌아다니시면서 그걸 주워서 땅땅 피셨어.

그래서 나도 일주일 동안 대못을 주워다 펴서는 육칠백 개를 갖다 드렸지. 용서해달라고.”

 

아버지가 영화 제작을 하다가 막판에 큰 빚을 지다

“그때 또 어떤 일이 있었느냐면 아버지가 영화 제작을 하다가 막판에 큰 빚을 지셨어.

어느 날 집에 갔는데 내 기타, 장롱, 텔레비전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거야.

‘독고성’ 이름이 금실로 박혀 있는 아버지 양복 안쪽에도. 아버지가 너무 몰랐어.

배우 신분으로 제작을 하니까 일반 제작자가 하는 것보다 두 배가 더 들었어.

애초부터 망하게 되어 있었어.  그 후 난 서울역에서 구두 닦고, 우유·신문배달을

하기 시작했지. 부끄럽지는 않았어.  그러다가 아버지 친구분이 10년 후에 갚으라며

700만원인지 900만원인지를 주셔서 그 돈으로 명동에 카페를 차렸어.

그 후에 별의별 일을 다 했어. 오퍼도 하고, 광고회사도 다니고, 주문가구 일이나

일식집도 하고.  흑단으로 주문가구 할 때는 하루에 포니 한 대씩이 들어왔어.”

 

돈 많이 벌 때는 십 몇 억인가 빌려주고 받지도 못했다.

“24억원 정도 되는데, 옆에서 (이)경규가 ‘형,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해.

좀 줄여’ 그러더라고. 아이 둘 데리고 살 때 30대 초·중반이었어. 사업하다가 안 돼서

다 팔아먹고,  빚 갚고 하니까 30만원 남더라고. 차는 있었어."

 

돈 빌려준 사람들

“난 누구한테 얼마를 줬는지 기억도 못해. 1,000만원 넘게 간 것도 있고. 100만원 이하는

그냥 준 거고. 하루는 집에 갔는데, 어머니가 딸애가 너무 운다고 집에 데리고 가라는 거야.

딸애 이름이 전지은인데 쩐찌라고 불렀지. ‘야, 쩐찌. 아빠가 지금 집을 수리하고 있거든.

일주일 동안 못 들어가.‘ 그런데 아빠랑만 있으면 된다고 그러더라고. 갈 데가 없잖아.

반포대교 옆에 잠수장 여관이라고 있어. 밤에 아이 귀를 휴지로 틀어막아 재우고

다음날은 남산식물원에 갔어. 그곳은 어린이회관이었는데 내가 신인남우상을 받은 자리잖아.

그날 양복이 없어서 아버지 양복 입고 불편해하면서 상을 받았는데 굉장히 기뻤던 기억이 나.

그때는 21세, 지금은 집이 없는 30대. 그때 노숙자를 여럿 만났는데, 한 명은 900원짜리

쪽방에 살다가 그것도 아까워서 여기서 잔다고 하더라고. 난 시나리오 쓰는 작가인데 구상을 한다고 그랬지.

그렇게 며칠을 잤는데 어느 날 옛날에 나한테 돈 빌린 친구를 만났어.

결혼해서 뉴욕 들어간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그날 밤에 아버지가 그곳으로 찾아왔어.

알고 보니까 그 친구가 식물원에서 노는 딸을 봤고, 딸이 아빠랑 여기서 다섯 밤을 잤다고 하니까

이상한 느낌이 들잖아. 들킨 거지. 아버지한테 그랬어. ‘1년만 아들이 없다고 생각하십시오.

어느 날 연락을 드리면 그때 다시 아들이 생긴 겁니다.’ 그 후 20여 일을 만남의 광장,

경복아파트 상가 짓는 빈터를 전전했어. 그런데 나중에 그 친구가 뉴욕 가더니

나한테 돈 빌려간 친구들한테 연락해서 11만4000달러를 모아서 보냈더라고.”

 

재기의 기회

“따지면 그 열 배는 받아야 하지만 그 돈으로 조그만 월세방 얻고 고맙지.

그러다가 1990년대에 '남부군'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를 하고,

'하얀 전쟁'에서 2800만원 정도를 받았어.

힘든 건 잠시였고, 그 후 이쪽 영화 일 하면서 지금까지 온 거지.

20년간 무명시절, 연기에 매진했는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줄 알죠?

연극은 1989년도까지 매년 했어. 3만원 받을 때 돈은 안 되지만 마음은 편했지.

영화는 했다, 빠졌다 한 거고. 사업하고 있으면 누군가 와서 ‘연기 좀 해’ 그러면 ‘그래?

좀 벌었으니까. 알았어, 그럼 해볼까?’ 근데 연기가 기질상 안 맞기도 했어.

내가 누구 밑에 있어본 적이 없잖아. 배우는 감독 시키는 대로 해야 하거든.

당시 영화판은 전부 욕하고 시장판이었어. 감독 지들이 히틀러야?(웃음)

20년 동안 열심히 했으면 난 무명 아니지. ‘연기를 천직으로 하고 계시죠?’ 물으면 ‘아니요.’

‘그럼 어떻게 40년 가까이 하고 계세요?’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빚 때문에.’"

 

딸 전지은은 '색계'에 나온 양조위가 아빠랑 비슷하다고 했다고 한다.

독고영재

"딸이 그런 이야기하기 힘든데. 아빠의 연기를 에로틱하게 본다는 거잖아요.

딸은 아직도 나한테 ‘쩐찌’야. 친구지. 학교 다닐 때 ‘아빠, 나 그날인데’

그러면 알았다며 다 사다 줬거든. 나한테 야단도 잘 치고. 담배도 딸 때문에 끊은 거야.

10년 가까이 피부과 실장 일을 하는데 담배 피우면 얼마나 험악한지 자료들을

내 컴퓨터에 넣어서 화면보호기로 만들어놨어. ‘마당에 나가서 펴!’ 압박하고.

딸이 제일 무서워.(웃음)”

 

배우 아들(독고준)도 SBS 공채 10기

독고영재

“지금 무명 6년째야. 무명 10년 이내에 무언가를 해야 해. 나처럼 20년 무명이면 안 되지”

 

3. 같은 2세 연예인 1950년 ~1960년시대 인기 영화배우 아들들

같은 2세 연예인 이덕화, 허준호, 최민수 등과 매우 절친하며 정기적으로 모임도 갖는다고 한다.

허준호가 독고영재를 구타하는 씬이 꽤 많이 들어있는 게 그것이다.

 

독고영재는 이예춘의 아들 이덕화와 함께 영화배우 아들 라인의 큰 형으로,

황해의 아들 전영록,

조항의 아들 조형기,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

박노식의 아들 박준규,

허장강의 아들 허준호 등

 

독고영재 절친 조형기 박준규
독고영재 절친 조형기 박준규

수많은 5060시대 인기 영화배우 아들들과 어릴 때부터 모임도 하며 알고 지냈다.

이들 독고영재, 이덕화, 전영록, 조형기, 최민수, 박준규, 허준호 등은 죄다

오토바이 매니아들이기도 했는데, 서로 오토바이를 돌려 타는 사이였다.

그리고 이덕화가 전영록의 오토바이를 빌려탔다가 대형사고로

목숨을 잃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천만다행으로 수술이 성공해서 생존하기도 했다.

 

독고영재 절친 조형기 박준규 전영록
독고영재 절친 조형기 박준규 전영록
독고영재, 최민수, 허준호
독고영재, 최민수, 허준호

젊을 때부터 타던 오토바이를 아직까지 탄다.

집에 오토바이 헬멧만 6~70개가 진열되어 있으며,

아직도 바이크동호회 회원들과 라이딩이나 바이크캠핑을 나선다고 한다.

 

독고영재는 젊을 때부터 타던 오토바이를 아직까지 탄다.
독고영재는 젊을 때부터 타던 오토바이를 아직까지 탄다.
독고영재는 젊을 때부터 타던 오토바이를 아직까지 탄다.
독고영재는 젊을 때부터 타던 오토바이를 아직까지 탄다.

5. 독고영재 무명생활

 

‘20년 무명’

1973년 영화 '빗방울'로 데뷔해 아버지처럼 배우가 되었다.

독고영재는 이 영화로 은곰상 신인남우주연상을 받게된다.

이  영화는 30만원의 출연료가 욕심나서 아버지(독고성) 몰래 찍은 첫 영화였다고 한다.

 

독고영재

 

“은사이신 동랑(東朗) 유치진(柳致眞·1905~1974) 선생과의 약속 때문에

거의 20년간 충무로와 등을 졌어요. 동랑 선생은 제게 순수예술인 연극만 하라고 권하셨어요. 

제가 〈빗방울〉로 신인상을 타자 학장실(당시 서울연극학교. 지금의 서울예술대학)로

저를 불러 ‘왜 상업예술(영화)에 출연했느냐’고 나무라시더군요.

다시는 영화를 안 하겠다고 선생과 약속했죠.”

 

무명 생활이 오래가면서 1980~90년대 에로영화나 B급 영화에 많이 나오기도 했다.

20대, 30대의 무명시절 20년 동안에는 열등감도 심했고, 

성격도 거칠어져서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을 못하고 있는 기간에는 반건달

(후대의 폭주족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도 치고 살았다고 한다)처럼 행동하고 다녔다고 한다.

 

독고영재

“무명생활 하는 동안 산전수전 다 겪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스물한 살부터 마흔한 살까지다.

고백하자면, 무명시절 B급 에로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단지 배고픔 때문만이 아니었어요.

방 두 칸, 반지하 셋방에 사는 어느 16밀리 감독의 가난한 살림을 보고 출연을 결심했어요.

저를 캐스팅하지 않으면 몇 푼 안 되는 연출료도 못 받으니까요.

충무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어쩔 수 없는 연민을 느꼈습니다.”

 

‘무명 20년’ 동안 그는 찬밥 신세의 서러움을 알았고

시쳇말로 밥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게 됐다고 한다. 

 

독고영재 1980~90년대 에로영화나 B급 영화
독고영재 1980~90년대 에로영화나 B급 영화

사실 그 시기에도 찾아보면 출연 작품 수는 적지 않으나, 알다시피 비중이 높은 조연이 아니고서야

일반적으로 조단역은 촬영분량이 적어 여러 작품에 나왔다고 해도 촬영을 한 기간은 짧을 수 밖에 없다.

하루이틀만 촬영하면 한 영화의 출연이 끝나기도 한다. 비중 높은 조연이라도 자주 했으면 괜찮으나,

드문드문 했을 뿐이고 상당 기간 동안은 비중 낮은 역할만 해서 그러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거 없는 날이 많았던 것이다.

 

세바퀴에 조형기와 함께 출연했을때, 조형기가 이를 폭로했는데 영화배우 아들 라인 모임에서

가죽옷에 반다나 두건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껌까지 씹으면서 어느정도 탤런트나 영화배우 활동을 괜찮게 하던 동생들 앞에서

껄렁거리며 한명씩 앞에 가서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독고영재

"얌마, 너 요새 잘나간다며? 너 어디(영화나 드라마 이름) 나오더라. 야 너 좋겠다" 

 

조형기의 표현으로는 동생들의 가슴을 손등으로 살짝 치며 말했다고 한다.

 

당시 탤런트였던 조형기 본인에게도 했다고 하는데, 조형기의 표현으로는 가히 그냥 불량배였다고.

다들 어릴때부터 보던 큰형님이라 시비에 대응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 폭로에 당황한 독고영재가 내가 젊었을때 힘들어서 잠깐 좀 그런 걸 갖고

너는 그런 걸 방송에서 얘기하고 그러느냐고 성을 냈다고 한다. 

 

조형기

"젊기는, 형님 그때 마흔이었수! 불혹의 나이!"

 

라고 받아치자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고 , 다른 출연진들도 당시 나이를 듣자 빵 터졌다.

 

다른 출연진

"40살이나 먹고 그러고 다니셨다고요?"

 

독고영재는 실제로 1952년생이기에 이때의 일은 1991년 상반기를 말한 것인데,

문제는 이 시기 직후인 1991년 8월에 조형기 본인은 교통사고 후 시체유기라는 중범죄를 저질러

경찰에 체포되고 구속되어 감옥에 갔었다는 것이다.

사람 죽이는 중범죄보다는 그냥 후배들에게 말로 시비걸고 모임 깽판치는 게 낫지 않나요?

독고영재의 프로필 생일이 가짜라는 명확한 정황 증거이기도 한데, 진짜 1953년생이라면

이 일이 1992년이어야 하지만 이때는 조형기가 계속 감옥에 있어서

(징역 5년이 나왔지만 1993년초 복역 1년반만에 가석방으로 출소) 저런 일이 있을 수가 없고,

독고영재의 배우 인생 자체도 1992년부터 술술 풀렸다.

 

6.  최민수의 추천으로  드라마와 영화 출연 무명시절 탈출

 

1992년은 영화, 1993년부터는 드라마까지 풀리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감독이나 제작자들에게 주조연으로 독고영재를 적극 추천한

최민수의 영향(당시 부친 최무룡을 뛰어넘을 대배우감으로 주목받고 있었고,

독고영재와 함께 주연을 2작품이나 했다)이 컸다고 한다.

아무튼 조형기 본인이 감옥가기 직전에 있던 일을 방송에서 말한 것도 대단하다 

최민수 최민수와 같이 출연한 작품은 영화를 중심으로 꽤 많다. 

엄마의 바다 이전에는 남부군, 결혼 이야기에 같이 출연했으며,

 

 

그러다가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하얀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잇따라

캐스팅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얀전쟁에서는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는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수상과 더불어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그 후 독고영재는 '엄마의 바다'(MBC, 1993)에서 묵묵히 사랑하는 여인(고현정)의 행복을 지켜주는 고독한 연기를 펼쳤다. 이 드라마 속에서 보여준 그의 독특한 화법과 개성적인 연기는 세인들의 뇌리에 배우 독고영재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40살이 넘은 중년 이후 점잖은 중년신사 이미지를 얻게 된다.

1993년 MBC '엄마의 바다' - 최승주역으로 출연하며 인생 대박이 난다.

https://hot-issue-xoxo.tistory.com/entry/배우-독고영재-험프리-보가트-흉내를

 

배우 독고영재 '험프리 보가트' 흉내를 내서 대박난 드라마 <엄마의 바다>

1993년 MBC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 출연하게 되면서 배우 독고영재 말 그대로 인생 대박이 난다. 40살이 넘은 중년 이후 인기를 얻게 되면서 점잖은 중년신사 이미지를 얻게 된다. 〈엄마의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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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SBS 코리아게이트 - 박정희 역

2004년 MBC 드라마 <영웅시대> - 박정희 대통령 역

2014년 TV조선 금토 드라마 〈불꽃 속으로〉 - 박정희 대통령 역

10년에 걸쳐 박정희 대통령 역을 맡은 독고영재 (서로 다른 드라마에 3차례나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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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을 쏙 빼 닮아 박대통령 역을 3번이나 한 탤런트 독고영재

10년에 걸쳐 박정희 대통령 역을 서로 다른 드라마에 3차례나 캐스팅된 것은 무척 이례적이라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닮기 위해 말투,몸짓을 따라했다는 독도영재가 연기하는 대통령의 연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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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계속 영화에서 주연이나 주연급 조연으로 활동하였다.

젊을 때 조단역을 전전하던 시절과는 차원이 달라진다.

 

아직도 TV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 선구안은 별로라서 인지도가 올라가고서도 싸구려 영화에 꽤 많이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주글래 살래에서 주인공의 아버지역과 키드캅에서 도둑놈 두목 역.

둘 다 작품성이 처참했고 흥행도 쫄딱 망했다. 오히려 무명시절에 비중 낮은 단역으로

나온 작품 중에는 괜찮은 작품들이 있다. 근데 본인이 별로 안 나온다.

엄마의 바다 이후에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테러리스트, 남자 이야기에 같이 출연했다.

 

 

동료 배우 이계인

군대에서 만난 이계인과도 계속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19년 10월 이계인이 혼자 사는 집에서 전신 마비 증상으로 쓰러진 것을

독고영재가 발견하여 목숨을 구한 인연이 있다.

이계인도 예능 자주 나오던 시절에 이덕화, 독고영재와 셋이서 술마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독고영재 절친 이계인
독고영재 절친 이계인
독고영재 절친 조형기 이계인
독고영재 절친 조형기 이계인

 

상술된 꼬장 이야기도 열등감이 심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도 아들이 스타가 되는 걸 못 보고 사망한 박노식(박준규 부친)이나 허장강(허준호 부친)보다는 낫다.

절친인 이덕화와는 해괴한 방향으로 전성기 기간이 비슷하다.

독고영재는 무명이 길어서 전성기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것인데 이덕화는 청춘스타로 명성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을뻔했다가 되찾은 사건,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남궁진과 맞붙어서 개표율 90%까지도 누가 당선될 지 알 수 없는 지경까지

간 초 혼전 양상을 보이다가 낙선 후 잠적한 사건으로 실질적인 전성기가 그리 길지 않았다.

본인이 교통사고로 중환자가 되고 장애를 얻은 것도 모자라서 자신이 퇴원하기도 전에

이미 병을 앓고 있던 부친까지 사망했던 그때만큼 선거 이후의 정신충격이 생각보다 더 커서,

한동안 우울증이 심했다고 한다. 아예 섬에 들어가서 3개월을 살면서 낚시를 하고 살았는데,

낚시하다가도 너무 괴로워서 바다에 뛰어들어 빠져죽고 싶다는 충동도 꽤 느껴봤다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성공한 배우가 되고도 중증 우울증을 두번(교통사고 후 부친 사망, 선거 낙선)이나 앓았다.

 

독고영재는 숫제 대기만성인데 이덕화는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해서 둘의 전성기가 비슷했다.

주글래 살래를 같이 작업한 김두영 감독과 '9시 뉴스'를 작업한다는 말이 나왔으나 무산되었다.

조폭 조양은과도 친분이 있으며 조양은 주연의 싸구려 조폭영화 보스에 조연으로 나왔다.

젊은 시절 뒷골목 조직 생활을 잠시 했다는 것을 TV 토크쇼에서 완곡하게 고백했다.

당시 본인이 설명한 당시 생활상을 따지고 보면, 정확히 말해 조폭 쪽이 아니라 오토바이를 타고 행패를

부리는 폭주족 조직이었다. 현대 폭주족의 원조.

 

정치적으론 보수 성향이며 드라마 코리아게이트와 영웅시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역을 맡았다.

박정희 전담 배우로는 이창환 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배우다.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후보 지지 선언에 앞장섰다.

보통 이진수, 이창환, 독고영재를 박정희 전문 배우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적으로는 극보수 성향

1994년 동료 배우 문성근의 아버지이자 재야 운동가 문익환 목사가 작고했을 때,

가장 먼저 조문을 왔다.

 

 

광우병 사태 당시

온갖 선동이 판치는 와중에 거의 유일하게 이성적인 발언을 한 것이 시간이 지나 재조명받기도 했다.

광우병 사태 당시 독고영재
광우병 사태 당시 독고영재

SNS 트위터 사칭

2012년 11월엔 트위터에서 독고영재의 이름으로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과

문재인 당시 후보를 거친 욕설로 비방하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는데,

자신은 SNS를 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트위터는 사칭으로 결론났다.

애당초 환갑에 가까운 중견배우가 난데없이 SNS를, 그것도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정치인을

욕한다는 거 자체가 초월적 발상이다. 말 그대로 고소각.

진중한 이미지지만 의외로 예능에서의 입담이 매우 좋다.

 2012년 당시만 해도 국내 유저수 극히 적고 젊은층에서도 잘 이용하지 않던 SNS였다.

그래도 한국 청년층은 0809시즌부터 트위터를 쓰던 시기여서 2012년도는 중장년층도

트위터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들어보기는 했던 시기이다.

 

 

예능 프로그램들

 

불후의 명곡 2 독고영재

"3분 동안 관객을 겁 준 거야, 흙 먹는 거야" 

 

불후의 명곡 2 독고영재
불후의 명곡 2 독고영재

4. 동안 얼굴

 

나이들고는 탈모때문에 그 이미지가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친한 배우들 사이에서

동안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무명시절 7살 어린 임예진이 그를 촬영장에서 처음보고

자신과 같거나 어린 나이인 줄 알고 "영재씨 안녕?"하면서 말을 걸어서 어이가 없던

나머지 말을 안했다고 한다.

최민수와 같이 영화 주연을 했을때는 동갑 친구로도 나왔다.

최민수보다 10살이나 형이라 최민수는 어릴때부터 독고영재를 형도 아니고

영재 형님이라고만 부른 사이였는데, 동갑 역할을 했을 정도니.

 

독고영재 임예진
독고영재 임예진

임예진이 계속 말을 걸자 "으흠.. 나 이덕화랑 친구다."라고 말을 하니

임예진이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일부러 임예진과 어릴때부터 연기한 이덕화의 이름을 댄 건데,

임예진은 심지어 이덕화랑 여러 영화에 출연하던 시절에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처음에는 안 믿었다고 하는데, 독고영재가 진지하게 화난 표정으로 노려봤다고 한다.

당시 눈빛이 너무 사나워서 임예진 본인 표현으로는 겁이 나서 눈을 피했다고 한다.

 

독고영재 임예진
독고영재 임예진

 

동안도 있고, 임예진은 중학생때 영화배우로 데뷔하자마자 유명세를 얻었을만큼 커리어가 긴 반면

독고영재는 무명시절이 길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자기보다 후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는 선후배가 절대적이라 (무조건 서열대로 하는 개그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후배가 약간 나이가 많으면 어린 선배가 그냥 편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렇다해도 7살 차이한테는 옛날에도 그렇게 안했으니 임예진은 혹시 본인보다

많을 가능성을 막연히 생각해도 한두살 정도라 봤을 것이다.

 

독고영재는 나이도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데뷔도 20대 초반이라서 연극데뷔가 1971년,

영화 데뷔가 1973년이고, 임예진이 중학생때 데뷔했음에도 1974년 데뷔라 경력면에서도 선배가 맞다.

물론 주인공만 하던 임예진 입장에서야 영화 조연도 자주 못하던 단역배우 선배를

기억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필모그래피 드라마

1988년 KBS2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 영각

 

1993년 KBS2 미스터리 멜로 금요일의 여인(최명길 편)

1994년 KBS2 폴리스 - 마동탁

1994년 MBC 아담의 도시 - 조상만

1994년 KBS2 딸부잣집 - 박혁민

 

1996년 MBC 사랑한다면 - 문경환

1997년 MBC 객사

1998년 KBS1 은아의 뜰

1999년 KBS1 당신 - 김진태

2000년 MBC 황금시대 - 이용호

2001년 MBC 보고싶은 얼굴 - 김재민

2001년 KBS2 잘난 걸 어떡해

2001년 MBC 선희 진희 - 강도식

2002년 MBC 리멤버 - 강태공

2003년 SBS 애정만세 - 강실장

2003년 KBS1 백만송이 장미 - 강준형

 

 

2005년 SBS 해변으로 가요 - 장달봉

2006년 KBS2 아줌마가 간다 - 심태준

2007년 MBC 태왕사신기 - 고국양왕

2007년 MBC 아현동 마님 - 김사현

2008년 SBS 순결한 당신 - 서유일

2009년 MBC 분홍립스틱 - 맹호걸

2009년 MBC 선덕여왕 - 세종

2011년 MBC 로열패밀리 - 김태혁

2011년 KBS1 당신뿐이야 - 나영익

2011년 채널A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 - 서준태

2012년 MBC 오자룡이 간다 - 나상호

2012년 MBC 빛과 그림자 - 이현수

2013년 MBC 7급 공무원 - 한주만

2013년 KBS2 삼생이 - 봉무룡

2013년 KBS1 지성이면 감천 - 안태진

2013년 MBC 오로라 공주 - 이신성

2013년 KBS2 예쁜 남자 - 박기석

2014년 JTBC 귀부인 - 박경준

2014년 KBS1 고양이는 있다 - 고동준

2015년 SBS 애인 있어요 - 최만호

2016년 MBC 좋은 사람 - 홍문호

 

2017년 SBS 브라보 마이 라이프 - 김호태

 JT그룹 회장 ‘김호태’로 출연,  부하 직원들을 인간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상스럽고 저열한 인물이다.

아들 ‘김준호’(배우 강성민)도 그를 쏙 빼닮았다.

 

 

한명구 감독의 〈제4 이노베이터〉(2014년작)에서 일본인 ‘후지타’로,

박선욱 감독의 〈90분〉(2012년)에 ‘민회장’으로 분했다.

 

독고영재

“1990년대 충무로를 누비던 동료 배우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꾸준히 출연하려면 영화 제작사와 유대관계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영화계를 이끄는 감독의

연령층이 30~40대이니 우리 같은 중견배우를 잘 몰라요. 게다가 분장이나 특수효과가 발달해서

30대를 감쪽같이 60대로 분장시켜요.따지고 보면 독고성·김승호·허장강이 전성기 때도 배우가

50대를 넘으면 다 퇴장했었죠. 허장강 선생도 40대 때 노역(老役)을 많이 하셔서 그렇지 쉰한 살 때

은막에서 사라지셨어요. 김승호 선생도 마찬가지고요. 문화예술계가 정치논리에 빠지지 않아야”

 

필모그래피 영화

 

독고영재는 1990년대 초 영화 〈남부군〉,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잇따라 캐스팅되면서 그제야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낸다. 

 

1990년 남부군 - 이봉각

 

무명의 내공을 채우고 있을 때 그를 은막에 다시 부른 이는 정지영 감독이었다.

 

정지영 감독(독고영재를 처음 봤을 때)

“어딘지 세상을 무척 힘겹게, 그러나 올곧게 살아온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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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뼈를 갈아서 만든 영화 <남부군> 안성기 , 최민수,조형기, 최진실,임창정,이혜영,독고

1990년도에 배우들의 뼈를 갈아서 만든 영화가 있다. 바로 영화 으로 한겨울에 촬영해서 배우들이 이렇게 고생한 영화는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고 했는데 엑스트라로 동원된 예비군들도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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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

 

1990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1992년 하얀전쟁 - 김문기 하사

 

독고영재

"〈하얀 전쟁〉은 정지영 감독에게 동경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저에게는 남우조연상을 안겼고요. 대부분의 촬영이 베트남 현지에서 이뤄졌죠.

 

청룡남우주연상 받으면서 ‘그래, 배우 해야겠다’ 생각했지. 1973년에 데뷔해서 20년 만에. 40세에."

 

 

 

무명생활이 길었다가 1992년 영화 하얀전쟁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20년 무명의 설움을 겪었는데 , 아들이 무명생활을 오래 해서

아버지인 독고성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얀 전쟁〉으로 다시 주목받게 된다. 

 

'하얀 전쟁'에서 받은 개런티는  2800만원(그때당시 큰돈)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시상식이 있던 날 아침, 아버지는 몸을 숙여 아들의 구두를 닦아주셨다고 한다.

전영록이나 이덕화가 나오면 아들을 배려해 슬그머니 채널을 돌리던 아버지는

아들이 20년 무명생활에서 벗어나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독고영재(남우조연상 수상 당시 수상소감)

"이덕화, 최민수, 전영록만 나오면 TV채널을 슬그머니 다른 데로

돌리시던 분이 계시다. 저희 아버님이다."

 

독고영재 마이웨이
독고영재 마이웨이

독고영재

“〈남부군〉 이후 출연이 거듭할수록 영화 속 배역의 비중이 점점 커졌어요.

〈남부군〉에서는 단역급 조연이었지만 〈하얀 전쟁〉은 조연, 〈헐리우드 …〉에선 비로소 완전한 주연이 됐죠.”

 

영화 〈구미호〉(1994)에 출연한 정우성과 고소영, 독고영재. 이 영화는 정우성의 첫 데뷔작

 

1993년 화엄경 - 해운(단역)

 

영화 〈화엄경〉 은 독고영재의 인생작품이라고 한다.

'화엄경'(1993)에서는 시골의 의사 역할은 맡았는데, 비록 단역이었지만

어느 영화에서도 보여준 적이 없는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독고영재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입니다. 1993년작인데 ‘해운’이란 인물로 딱 한 시퀀스에 출연했어요.

고작 4~5분의 자그마한 역할이었지만 제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까요?

제가 생각한 대로의 연기를 보여줬어요. 사람들이 ‘저 사람이 독고영재 맞아?’ 그랬으니까요.”

 

〈화엄경〉 속 ‘해운’은 다리를 절뚝거리는 욕쟁이 의사(두꺼운 안경)

무슨 사연인지 ‘해운’은 도시를 떠나 궁벽한 어촌에서 가난한 이들을 치료하며 산다.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 ‘선재’는 ‘해운’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선재 :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는 참 커요. 거기에 비하면 사람은 너무 작아요. 그렇죠?

 

해운 : 못난 놈. 어째서 사람이 바다보다 작다고 생각하지? 저 하늘보다도 크고 우주보다도 큰 게 사람인데.

 

선재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해운 : 사람이 만든 시간을 생각해 봐. 우주의 시작만큼이나 긴 시간을 통해 사람이 만들어졌어.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물질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죽고 살면서 오늘날

사람에까지 이르렀어.  (선재가 쥔 조개껍데기를 보며) 그 조개껍데기도 바다만큼 크고

우주만큼 큰 것이야. 이 세상엔 크지 않은 게 없어.

 

영화 〈화엄경〉(1993)의 한 장면. 독고영재는 사연 많은 욕쟁이 의사 &lsquo;해운&#39;
영화 〈화엄경〉(1993)의 한 장면. 독고영재는 사연 많은 욕쟁이 의사 해운'

 

선재 : 그런데 아저씬 왜 욕쟁이가 됐죠?

 

해운 : 허허허. 욕이라도 해야지 어떡하니? 그 크나큰 사람들이 바보처럼 돈이 없어

쩔쩔매고 외로워하면서 죽어 가는데 ….

 

선재 : 돈이 사람보다도 더 큰가요?

 

해운 : 왜 너 같은 녀석이 날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자, 바다나 실컷 보고 가려무나.

모든 것은 낮아져 바다가 되고, 하늘은 거기로 내려와 있잖니? 저것은 얼마나 평등하냐?

 

선재 : 평등이 뭐예요?

 

해운 : 어리석은 이들은 아래위를 다투지만, 바다는 아래위를 다투지 않는다.

어리석은 이들은 많고 적음을 다투고, 있고 없음을 다투지만, 저것은 그렇지가 않다. …

 

1993년 키드캅 - 도둑 조직 두목

1993년 키드캅 - 도둑 조직 두목 독고영재 고규필
1993년 키드캅 - 도둑 조직 두목 독고영재 고규필

1994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 윤명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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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 , 독고영재 주연의 1994년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1990년대에 단연 최고의 스타였던 최민수는 이미 주연급 배우로 활약하고 있던중, 최민수와 독고영재는 이른바 ‘2세 배우‘라는 공통점으로 1994년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같은 주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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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리스'(KBS, 1994)

1995년 테러리스트 - 태호

 

1996년 7월 개봉 영화 '보스' 조폭출신 조양은 주연 독고영재는 보스 오른팔역

 

배우 독고영재는 같은 2세 연예인  박준규 영화에 출연 

SBS 강심장 3월 22일 방송 독고영재는 실제로 젊은 시절 뒷골목 주먹질 좀 했다고 한다.

독고영재와 조양은은 토크쇼도 출연하는 등 꽤나 친한 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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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스'이야기, 실제 조폭이였던 조양은 주연 , 어머니 역할 김수미 , 현재 조용히 선교사 활

박근형,김수미,김형일,박준규,송금식,박상면,정웅인,독고영재,김소영, 그리고 여의도 순복음교회 목사인 조용기 목사가 나오는 영화가 있습니다. 출연진이 무척 화려 한데요. 1996년 개봉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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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영재 조양은 박준규 출연 영화 &#39;보스&#39;
독고영재 조양은 박준규 출연 영화 '보스'

 

CF감독 시절부터 독고영재와 알고 지낸 사이로 나와도 오랜 친구

박찬수(3D입체영화 감독)

“진짜 멋진 남자야, 보스 기질이 있어. 돈이나 권력보다는 인품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지.

정에 약해. 자기가 어려워도 사람 만나면 주머니에 있는 돈 털어서 주고.

나도 힘든 시절에 형을 만난 적이 있는데 주섬주섬하더니 만 원짜리를 집히는 대로

꺼내주더라고 기죽지 말라고.”

 

1997년 마지막 방위 - 특수부대 부대장(대령)

2003년 주글래 살래 - 소룡 아버지

2003년 나비 - 허대령

2006년 한반도 - 해군 작전사령관(중장) 

독고영재 영화 아빠는 보디가드
독고영재 영화 아빠는 보디가드

독고영재

“정치인이 문화예술인을 이용하려는 풍토가 문제입니다. 

정치논리 탓에 순진한 예술인이 소신을 펼 수가 없더군요. 이용하다 쓸모가 없어지면 버림받기 일쑤죠.

래전 제가 ‘선플과 나눔’이란 모임을 만들어 초대 총재를 맡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단체장과 의회를 장악한 다수당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지원이 결정되더군요. 굉장히 힘들었어요. 

임기가 끝나 총재직을 물려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남 돕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오해도 많이 받고 국회의원 나오라는 소리도 무지하게 들었죠. 결국엔 정치논리가 문제더군요. 

아무리 좋은 취지의 일이라도 못하게 막아야, 다음에 자신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집행조직 위원을 맡았던 ‘서울 충무로국제영화제’도 

그런저런 이유로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국민이었어요.” 

 

 

독고영재

“정치가 영화를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민에게 긍정의 위안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드물어요.

그저 과거 얘기만 합니다. 영화 타깃이 20~30대여서 그들 시각에 맞는 영화를 만들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가족이나 실버 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영화가 나왔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문화예술계가 정치논리에 빠지지 않아야 해요.조연배우가 돋보일 때 영화가 성공한다,

주인공만으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갈 수 없다.

조연이 받쳐 줘야 주연이 돋보인다. 어쩌면 주연보다 책임이 더 크다.

주연보다 연기를 더 잘하는 조연이 많은 것이 한국 영화계의 현실”

 

경험이 없으면 타고난 재능도 못 살린다.

독고영재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삶이 자신을 거칠게 흔들 때 함께  흔들리며

한 뼘씩 성장하고 새로워진다는 의미입니다. 간혹 어떤 조연의 연기를 보면

‘천 번은 가슴앓이를 했겠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배우가 있어요.

천 번은 가슴앓이를 해야 진짜 배우가 됩니다. 그런 연기를 해야 해요.”

 

 

영화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깡패로 나왔던 배우 진선규

독고영재

“연기적 카리스마는 윤계상이 돋보였지만 진선규는 조연의 힘을 보여주었어요.

어떤 영화는 감독의 연출력으로 끌고 갑니다. 배우는 그저 따라가죠.

그러나 어떤 영화는 배우가 영화를 이끌죠. 〈범죄도시〉는 탄탄한 조연들이 영화를 이끌어요.”

 

독고영재(자신만의 연기법)

“후배들에게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해요. ‘보통 사람과 같은 인생을 살지 마라’고 말하죠. 

경험할 때 느끼는 좋다, 나쁘다, 속상하다는 감정을 갖지 말라는 충고도 하죠. 

경험은 연기의 기초입니다. 연애도 많이 해 보라고 권해요. 연애할 때의 열정이나 기쁨, 

헤어질 때의 낙담이나 슬픔도 다 연기 속에 쌓입니다. 연기의 기교는 비슷하지만 경험의 여부에서 차이가 납니다. 

경험은 상상력으로 커버할 수 없어요. 보통사람처럼 살면서 배우가 된다? 안 됩니다. (배우가) 될 수 없어요. 

(연기) 기술만 적당히 배워 배우가 되려 한다면 진작 그만둬야 합니다. 

지금 무대나 스크린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은 죄다 엄청난 고통을 감내한 이들입니다. 

그분들이 얘기를 안 꺼낼 뿐이지 다 사연이 많아요. 그런 경험을 한 이들만이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어요.

배우는 다중인격자가 돼야” 

 

독고영재

“아날로그 시대의 연기는 감성적으로 단순하지만, 디지털 시대는 다중적인 성격의 연기를 요구합니다. 

이제 배우는 다중인격자가 돼야 해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강자냐 약자냐에 따라 배우의 말투나 

생각이 달라져야 해요. 연기 영역을 액션이나 멜로로 규정지어서도 안 됩니다. 코믹 연기도 할 수 있어야 해요.

다중 연기를 위해서는 다중의 감성을 지녀야 합니다. 러시아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Konstantin Stanislavski)가 

배우의 조건으로 ‘내적 진실의 표현 능력’을 언급하던 때보다 지금은 내적 갈등이 훨씬 많은 시대니까요.” 

 

 

독고영재(누구나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1만 시간의 법칙’은 배우에게만은 예외입니다. 노력만으론 부족해요. 

운이 따라줘야 합니다. 능력이 타고났다면 운이 다가오기까지 버텨야 해요. 

버티다 보면 운과 시대성이 맞아떨어질 수 있어요. 물론 DNA를 타고나야 합니다. 

그래야 ‘스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요. 동랑 선생 말씀은 ‘스타는 90% 타고나야 한다’고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