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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방성자 프로필- "대한민국 여교사 출신 1호 여배우"

 

1960년대 아름답고 시원시원한 미모를 지닌 특색있는 연기자 방성자가 있었다.

배우 방성자씨는 대구사범학교를 나와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가 24살 되는 해에

최훈 감독에게 발탁돼  '애수에 젖은 토요일'(1960년)이라는 영화로 데뷔하게 된다.

영화 출연은 처음이였으며  무대경험도 없었던 방성자는 조역으로 등장하여

대학생 구혜란 역을 맡아 스무스하게 소화시킨다.

교사생활을 했던 미모의 재원으로,  당시로서는 드문 166cm의 늘씬한 몸매와 서구적인 미모에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닮은 아름다운 외모로 영화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게 된다.

 

1. 배우 방성자 프로필

 

이름 : 방성자 Bang Seong-ja / 房誠子 

출생 : 1940년 5월 12일 (현재 나이 85세) 경북 포항

주소 : 서울 중구 예장동

사망 : 198*년(폐결핵으로  사망?)

취미 :  독서, 영화 감상 ,음악 감상 , 승마 , 고전 무용

신장 : 166cm

종교 : 순복음교회의 교인인 가족과 더불어 착실한 교인

활동년대 :  1960년대 ~1970년대

방성자 어린시절

일본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나온 아버지 방만재씨의 딸인 방성자는 

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철저한 가정교육과 두살 살때부터 고전 무용과 승마를 배웠다고 한다.



방성자

"사과로 유명한 경상북도 대구에서 희곡 시나리오를 쓰시는 아버지 방만재씨와

당시 무용가로 활약 하시던 어머니 오남매중 맏딸로 태어 났어요.

그러므로 저는 예능 가정에서 남 보다 쉽게 예술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무용가 였기 때문에 저는 두 살 때부터 무용을 배웠어요.

그러나 아직 개인 무용발표회를 가진 바 없고 그렇다고 공연한 기록도 없어요.

왜냐하면 도무지 저는 무용에 취미가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땐 참 딱 하기만 했지 손발이 맞지 않는 걸 어떻게 하겠어요.

또 나의 본의가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후 아버지 사업으로 서울에 올라오게 되었어요.

그때 서울에 첫 인상은 대구에 비해 별로 놀라게 하지 못했어요."

 

방성자는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매년 학교에서 열리는 학회에는 무용뿐만 아니라 

연극에도 빠져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방성자 6살 서울 남대문 국민학교 입학

"서울 남대문 국민학교 입학했어요. 그때 반 학생들이 나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고

무엇이 그렇게 우습던지 서로 킥킥거리기만 했어요.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고 지냈으나

나중에 보통으로 여기고 말았지요. 그러나 끝내는 저는 일부러 경상도 말을 이용하여

나의 고향인 대구라는 곳을 더 한층 과시해 본 일이 있기는 해요.

서울에 정이 들 무렵 6.25 사변으로 다시 대구로 피난 내려갔어요.

몇 년간 떨어졌던 소꿉친구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이 어린 저의 가슴을 뿌듯하게 했어요.

그 후 전쟁이 끝나고 서울이 수복 될 때 아버지는 서울로 와서 운수사업을 시작하셨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로 다시 대구 외갓집으로 내려가 대구사범학교를 진학했는데

이 무렵 외삼촌(조용수)께서 영화계의 일하고 있었던 관계로 영화에 대한 관심이 나의 마음을

급진적으로 강화 시켰어요. 영화배우가 된다는 야심은 저의 작은 가슴에도 용솟음쳤고

이런 연관에서인지 학교 공부는 통 머릿속에서 들어가지 않았어요.

이 무렵 스포츠계의 관심을 가져 승마 에 열 중해 어느 정도 잡념을 가실 수는 있었어요."

 

학창시절
형제들과 함께 성악콩쿠르에서는 항상 특등을 차지하는 음악 가족이기도 하다. 
대구에서 무용 발표회를 열었는데 그때 성황이 방성자로 하여금 무용 연구소를 가졌으면

하는 소원을 가지게 되면서 앞으로 돈을 벌면 결혼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 무용연구소 만은 

내고야 말겠다고 자기 자신에게 다짐했다고 한다.

청년 시절에 연출을 집어치우고 뜻한 바 있어 사업계로 전업을 한 아버지가 

방성자를  대구사범학교로 입학 시킨다. 

 

 

1958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

여러 곳으로 전전하며 국민학교 교편을 잡게 된다.

 

방성자

"지금도 제일 인상깊었던 일은 제가 포항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벌써 중학생들이 되었으니까 말이에요.

지금도 가끔 옛날에 담임선생님이라고 하면서 편지가 오기는 하지만 .."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던 중 연기자가 되고 싶어 서울로 상경한다.

방성자의 아버지와  배우 박노식 사제지간이였다고 한다.

 

2. 방성자 필모그래피

최훈 감독에게 발탁되어  '애수에 젖은 토요일'에 데뷔할 때만 해도 꼭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자신을 한번 테스트해 보겠다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나

한국일보 평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던 남미리, 손미희자, 차유미 등과 함께 신인 청춘 스타로 기대를 모았으며

'아낌없이 주련다'(1962), '사랑과 미움의 세월'(1962), '못 잊어'(1969) 등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맡아

연기하기도 했으나, 그와 함께 '특등신부와 삼등신랑'(1962), '사장 딸은 올드 미스'(1963),

'남자 조종법'(1963), '부부조약'(1963), '마의 계단'(1964), '말띠 신부'(1966) 등의

영화에서 발랄한 신세대 여성의 이미지 또한 연기하며이후 총 1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60년 데뷔 방성자(당시 나이 24살)

"학교 선생일을 마저 버리고 서울로 상경 했을 때 저의 마음은 한 껏 부풀었지요.

무용 연구소 조교로 일하면서 영화계의 길을 찾고 있어서 극장의 영화가 바뀌기

무섭게 극장에  출입 했는데 저는 영화감상은 꼭 혼자 갔어요.

그래야 연기 공부가 될 것 같아서요. 때마침 나의 인생을 좌우할 때가 왔어요.

우연한 자리에서 최훈 감독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때 최감독는 '장마루촌의 이발사'라는 영화를 준비 중이어서 단역으로 출연하여

스크린에 첫선을 보였어요. 비록 단역이었지만 혼자서 밤을 세우면서 연기 연습을 했는데, 

누가 보면 꼭 미친 사람 같다고 했을 거예요 그러나 이 영화에서 별 계획적인 성과를 이루어지는 못했어요."

 

1960년 영화 '애수에 젖은 토요일'(감독 최훈) 구혜란 역

최훈 감독의 눈에 띠어 영화 '애수에 젖은 토요일'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입문하게 되는데 ,

영화 출연은 처음이였으며  무대경험도 없었던 방성자는 조역으로 등장하여

대학생 구혜란 역을 맡아 스무스하게 소화시킨다.

 

방성자

"늦가을 기회는 다시 왔어 왔어요. 역시 최훈 감독의 '애수에 젖은 토요일'에 출연하게 되었지요.

역시 단역이었지만 몇 년간 원하던 일이 소원 성취로 이루어진 것 같더군요

그러나 동경하던 영화계 생활은 생각하기 보다 너무나 판이 했어요.

영화배우 란 하나의 사치품 같은 것이어서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허나 배우가 되겠다는 제 생각엔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1961년 영화 '특등신부와 삼등신랑'(감독 전홍직) 구애리 역(이수련의 애인, 입분의 친구) 

말괄량이이로 나온다.

1961년 영화 '상록수'(감독 신상옥) 옥화(동화 처) 

목화라는 기생 역을  처음 맡게 되었는데 ,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기생역을 해 내고

방성자는 순진한 역보다는 오히려 요부 역이 하고 싶은 역으로 변했다고 한다.  

 

 

1961년 영화 '아버지'(감독 최훈) 최미연(남수의 애인)

1962년 영화 '주유천하'(감독 안현철) 옥랑  

1962년 영화 '내일의 태양'(감독 오영근) 복주 

1962년 영화 '한많은 미아리고개'(감독 엄심호) 용자(효신의 딸) 

1962년 영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길'(감독 전홍직) 유백희(서울양재점 모델) 

1962년 영화 '상한 갈대를 꺾지마라'(감독 강대진) 애숙  

1962년 영화 '아낌없이 주련다'(감독 유현목) 우정은(정원의 여동생, 영희의 동급생)  

 

 

1962년 영화 '사랑과 미움의 세월'(감독 강대진) 미혜  

은행원으로 나온다.

 

"강대진 감독의 '사랑과 미움의세월'에 출연하여 차츰 팬들로 한 두 사람이 늘어

지금은 굉장한 숫자를 헤아리고 있고 , 지금까지 많은 팬분들이 변함이 없습니다"

 

 

1962년 영화 '감나무골 공서방'(감독 김응천) 영숙  

"김응천 감독의 '감나무골 공서방' 저로선 처음으로 히로인으로 출연했죠.

그리고 줄곧 시간이 흘러감 과 동시에 저에 대한 인기도 차츰 달라지더군요.

주연도 해보고 그나마 어떤 영화는 제가 출연하지 않으면 돼 약이 서툴다는 것도 있었지요.

이제 앞으로 일이 저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 보겠다는 포부도

제딴에는 가지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 해 버릴 수 있을까요.

이렇게 저를 찬찬히 완전한 배우러 길러주고 또 끔찍히 생각해 주시는 영화계 선배님과

또 팬 여러분에게 연기로나마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 할 뿐이에요

그리고 어디까지나 나에게 돌아오는 모든 책임은 한갖 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영향을 미치는 크나큰 인기가 저 자신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하고 싶습니다."

 

1962년 영화 '비밀통로를 찾아라'(감독 이용호)  

1962년 영화 '부라보 청춘'(감독 김수용) 수련  

'브라보 청춘아'에서는 미용사로 나온다.

 

1962년 영화 '여판사'(감독 홍은원) 김원(진숙의 시누) 

 

 

1962년 영화 '월급쟁이'(감독 이봉래) 박금분(종달의 둘째딸)  

 

 

1962년 영화 '사랑은 주는것'(감독 엄심호) 유은경(조화연구소원) 

1962년 영화 '애란'(감독 조긍하) 선월(옹주의 시녀)  

 

 

1962년 영화 '새댁'(감독이봉래) 작은댁  

 

 

1962년 영화 '겨울나그네'(감독 박종호)

1962년 영화 '칠공주'(감독 정창화) 제4공주

1963년 영화 '말띠여대생'(감독 이형표)  

1963년 영화 '사위소동'(감독 양인은) 유리

1963년 영화 '새엄마(감독 강대진) 정옥  

 

 

1963년 영화 '부부조약'(감독 최훈) 서정숙(인숙의 동생)  

1963년 영화 '백년한'(감독 이종기,감독 김화랑) 방자(마사꼬, 일녀, 영친왕비) 

1963년 영화 '청춘교실'(감독 김수) 도형자 

1963년 영화 '비나리는 호남선'(감독 윤예담) 정미  

1963년 영화 '돈바람 님바람'(감독 김수용) 월향  

1963년 영화 '언니는 좋겠네'(감독 이형표) 정혜 

 

 

 

1963년 영화 '귀국선'(감독 이병일, 1963) 에이꼬  

1963년 영화 '청색아파트'(감독 이형표) 공현주 

 

 

1963년 영화 '사랑아 별과 같이'(감독 이규웅)

1963년 영화 '성난 능금'(감독 김묵) 수미(우진의 약혼녀)

1963년 영화 '상해의 밤'(감독 엄심호,이용호) 리화  

1963년 영화 '여자의 열쇠'(감독 손전) 송영옥(여대생, 송사장의 딸)  

1963년 영화 '왈순아지매'(감독 이성구) 정하  

1963년 영화 '천동'(天動)(감독 정승문) 고미혜(두수의 약혼녀)  

1963년 영화 '남자 조종법'(감독 정일몽) 이혜옥(닥터장의 처)  

1963년 영화 '다시는 놓지 않으련다'(감독 양인은) 권유미 

1963년 영화 '울며 헤어진 부산항'(감독 강대진) 미숙(명숙의 후배, 씽어)  

1963년 영화 '황건적'(감독 주소천)

1963년 영화 '사장 딸은 올드 미스'(감독 김응천) 화라  

1963년 영화 '광야의 왕자 대 징기스칸'(감독 이종기) 볼테 

1963년 영화 '희갑이 목욕탕 개업하다'(감독 안성찬) 이선생의 처  

1963년 영화 '오색무지개'(감독 조긍하) 경숙(사녀)

 

 

1963년 영화 '흑산도'(감독 한홍열 ) 섬마을 학교 김선생  

1963년 영화 '범인은 너다'(감독 이종기)

 

 

1963년 영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감독 최훈3) 

1963년 영화 '가정교사'(감독 김기덕) 전영자

1963년 영화 '자문밖 설마담'(감독 한상훈)

1963년 영화 '옛날의 금잔디'(감독 강대진) 김미혜 

1963년 영화 '칠십칠번 미스김'(감독 김기덕) 오정숙 

1963년 영화 '안개낀 거리'(감독 강범구) 최지자(진철의 후처) 

1963년 영화 'YMS 504의 수병'(감독 이만희,설봉) 미쓰 

 

 

1964년 영화 '보고싶은 얼굴'(감독 김성복) 영란 

1964년 영화 '사랑이 메아리치면'(감독 강대진) 이상숙 

1964년 영화 '대석굴암'(감독 홍성기) 별아기  

1964년 영화 '죽자니 청춘 살자니 고생'(감독 권철휘) 고명희  

1964년 영화 '홀어머니'(감독 홍은원) 미영 

1964년 영화 '안시성의 꽃송이'(감독 이규웅) 구슬아기  

1964년 영화 '사자성'(감독 최인현) 옥선(좌위장의 딸) 

 

 

1964년 한국 최고의 여배우: 전계현, 엄앵란, 김혜정, 태현실, 방성자

1964년 한국 최고의 여배우: 전계현, 엄앵란, 김혜정, 태현실, 방성자

 

1964년 영화 '잉여인간'(감독 유현목) 은주  

1964년 영화 '대륙의 밀사'(감독 김묵) 가희  

1964년 영화 '신촌아버지와 명동딸'(감독 이성구) 경화(오선의 딸)  

1964년 영화 '위험한 육체'(감독 김수용) 양인숙  

1964년 영화 '니가 잘나 일색이냐'(감독 김수용) 혁주  

1964년 영화 '십자매 선생'(감독 임권택)

 

 

1964년 영화 '연애졸업반'(감독 이형표) 오자영(패션 디자이너)

 

 

 

1964년 영화 '아편전쟁'(감독 김수용) 앙여란(양대인 딸)  

1964년 영화 '바람난 고양이들'(감독 김용언) 혜숙(여대생)  

1964년 영화 '처녀도시'(감독 이형표) 정란 

1964년 영화 '마의 계단'(감독 이만희) 오정자  

1964년 영화 '공작부인(감독 이병일,이상언) 춘희  

1964년 영화 '연애할 시간 없다' (감독 이종기)

1964년 영화 '신식할머니'(감독 백호빈) 장미아(한국의 애인)  

 

1964년 04월 이우영씨와 약혼

영화계에서 일하는 이우영과 결혼한다

 

1965년 영화 '이수일과 심순애'(감독 김달웅) 은경 

1965년 영화 '옥이엄마'(감독 장일호) 인자  

1965년 영화 '상속자'(감독 김수용) 미리(영진의 손녀)  

1965년 영화 '말띠신부'(감독 김기덕) 이영희(007 흥신소장)  

 

방성자

"내가 이렇게 말하면 마치 내 자랑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몹시 후리후리하게 큰 키와 시원스러운 두눈 을 가지고 있다 해서 나를 전형적인

여대생이 아니면 부잣집 막내딸 밖엔 인정을 안 해주 던거요.

그렇지만 나도 세월의 흐름과 같이 나이도 먹어서 또 시집도 가고 해서 아예 처녀 역은

거들떠 보지 않으려고 해요. 고상한 역 다시 말해서 유한 마담 역이라  하는 것 등

꽤 잔존한 얘기 같지만  이젠 이런 역을 맡아 보았으면 해요. 

' 미스방 '아니지요 '미세스 방'이니까. 하긴 주위가 그렇게 만들어 줘야 되지 않겠어요. 

신인 군상 가운데 유별나게 주목을 끌었다 하여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을 눈부신 성장으로 

나도 꽤는 고생 된 노력을 했지요. 무엇보다 특이한 마스크와 일종의  행운 그것이었다고 

생각 해도 무방할 것 같아요."

 

 

1965년 영화 '육체의 대결'(감독 최석규) 김매리  

1965년 영화 '울면서 한세상'(감독 노진섭) 수옥  

1965년 영화 '밤은 말이 없다'(감독 강범구)

1965년 영화 '후회하지 않겠다'(감독 이상언) 현주 

1965년 영화 '피와 살'(감독 민제) 혜경 

1965년 영화 '나도 연애할 수 있다'(감독 임원직) 유영주(유노인 딸) 

1965년 영화 '열풍'(감독 이신명) 윤정  

1965년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감독 이신명) 미숙  

1965년 영화 '예기치 못한 사랑'(감독 박종호)  

1965년 영화 '눈물의 영도다리'(감독 김응천) 인애  

1965년 영화 '청춘사업'(감독 심우섭) 미아  

 

 

 

1965년 영화 '어머니의 청춘'(감독 유동일) 옥희 

 

1965년 영화 '육체의 문'(감독 이봉래) 홍성숙  

 

방성자

"저의 짧은 기간의 배우 생활을 더듬어 보기에 앞서 팬들로부터 하루 소식통에 팬레터로

질문을 받는 것은  "배우는 미인이어야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고저 해요.

한마디로 말씀 하자면 배우는 결코 미인이 아니더라고 할 수 있겠어요.

물론 저도 미인이 못 되는 것이죠 이런 사실들을 입증할 수 있는

좋은 예로서는 저는 아직 미인대회 이력서도 못 제출 했으니 말이에요.

그만하면 나ㅇ 형편없는 진상이 어떤가를 여러분이 웬만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못생긴 여자라고 입증하는 것이 되겠지요.

또 이런 사실에 대조적인 것을 살펴보면 미인대회에서 뽑힌 사람 중에 배우로서 활약 하는

사람이 불과 몇 사람이나 있어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어요.

미국 헐리우드에서는 전 세계적인 배우로 총애를 받고 있는 리즈테일러, 오드리햅번 ,

나탈리우드 등의 스타들도 저처럼 미인 대회 나간 적이 없었지만 세계적인 각광을 받는

스타들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니겠어요."

 

1966년 영화 '진흙속에 핀 청춘'(감독 한상훈,) 이기라  

1966년 영화 '훈장은 녹슬지 않는다'(감독 박성복) 미스강  

1966년 영화 '이몸을 불태워도'(감독 한상훈)

1966년 영화 '삼천포 아가씨'(감독 강찬우) 김민혜(딸) 

1967년 영화 '총각원님'(감독 최인현,) 윤규수 

1967년 영화 '처녀귀신'(감독 심우섭) 순애(고박사의 아내)/ 순자(순애의 쌍둥이) 

1967년 영화 '칠부열녀'(감독 최인현) 벽도 

1967년 영화 '빙점'(감독 김수용) 김간호원 

1968년 영화 '고향무정'(감독 박종호) 윤경  

1968년 영화 '나교'(裸橋)(감독 이희중) 서정리(괴뢰군)  

1968년 영화 '재혼(감독 고영남) 경옥  

1968년 영화 '슬픔은 파도를 넘어'(감독 김효천) 김영혜(인국의 애인, 교포) 

 

 

1968년 영화 '흑진주'(감독 이중호) 송미숙(어장주의 영예)  

1969년 영화 '못잊어'(감독 박구) 박혜숙(경민의 처) 

 

 

1969년 영화 '극동의 무적자'(감독 최인현) 하루꼬  

 

 

1969년 영화 '형'(감독 이상언) 수미  

1969년 영화 '마음대로 하세요'(감독 이희중) 김선녀(간호원) 

 

 

1969년 영화 '오인의 사형수'(5인의 사형수)(감독 강민호) 혜숙

 

 

  

1969년 영화 '팔푼이부부'(감독 심우섭) 남현숙(타이피스트) 

 

 

1970년 영화 '세상만사 뜻대로'(감독 정인엽,) 정옥(장녀)  

1970년 영화 '별명을 가진 오형제'(감독 고영남)

1970년 영화 '이별의 십오열차'(감독 김기덕) 현옥 

1970년 영화 '천하일색 말괄량이'(감독 박준영) 장옥주(싸롱 마담 )

 

 

 

1970년 영화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감독 정진우) 배정자(일본대사 수행원)  

1970년 영화 '일등사장'(감독 김기)  

1971년 영화 '풋사랑'(감독 정진우) 혜란(광훈의 연인) 

1971년 영화 '오빠'(감독 이상언,) 진이(창규의 동생)  

1971년 영화 '형'(속)(감독 이두용) 수미(상진의 처)  

1971년 영화 '서방님 따라서'(감독 진천) 홍도(긍제의 옛사랑)  

1971년 영화 '가슴이 터지도록'(감독 전조명)

1971년 영화 '그대 가슴에 다시한번'(감독 김사겸) 정란 

1971년 영화 '첫정'(감독 장영국) 은경 모  

1971년 영화 '내 아들아'(감독 조문진)

1971년 영화 '원한의 40계단'(감독 문상훈) 홍심(진구의 처제)

 

 

 

1972년 영화 '밀녀'(감독 이신명)

1989년 영화 '잡초들의 봄'(감독 문여송) 혜련

문여송 감독의 '잡초들의 봄'에 출연하기도 한다.

 

 

수상내역(영화)

1963년 제4회 월간 영화세계사 주최 ‘넘버원 인기상’ : 조연여우상

1965년 영화잡지사 제정 '한국 최고인기 배우 및 영화상' : 조연상

 

* 참고문헌

조선일보 1961년 12월 30일 석간 4면

1972년 총기 관련 스캔들(동아일보)로 영화계를 떠난 후,

동아일보 1972년 10월 27일 7면

 

은퇴후 사망

이혼후 재벌가 아들 함기준을 만나 함께 동거하다가 강도가 그들이 사는 곳을 습격하는 바람에

총격 사건이 벌어지며 재판 과정을 거쳐 이미지 추락후 연예계에서 강제 은퇴후 술집마담을

전전하다가 암으로 쓸쓸히 죽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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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방성자 - '총기 사건'으로 비운의 주인공된 여배우

1972년 1월 14일 새벽 대한민국 연예계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일어난다. 여배우 방성자씨의 연인 함기준씨가 도둑에게 총을 발사했지만, 연인 함기준을 대신해 방성자 씨가 범죄를 뒤집어 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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