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혜선 (81세) 님은 1961년 KBS 공채 1기로 연기 생활을 시작해
여간첩, 혹독한 시어머니, 인자 한 어머니 등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것을 토대로
연기 생활 6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배우다.
전남편 배우 박병호와는 1963년 KBS 공채 동기로 만나 결혼후
1975년 이혼하면서 남편의 사업빚을 10년동안 갚으면서
세명의 자녀를 훌륭히 키워낸것으로도 유명하다.
무남독녀였던 그녀의 어린시절과 결혼생활 그리고 이혼후 연기생활에만 집중했던 시절을 돌아보자.
1. 배우 정혜선 프로필
정혜선 鄭惠先 | Jung Hye-seon
본명 정영자 (鄭榮子)
출생 1942년 2월 21일 (81세) 서울특별시
학력 수도여자고등학교 (졸업)
종교 가톨릭 (세례명: 카타리나)
데뷔 1961년 KBS 공채 1기 탤런트
어린시절
생애 어릴 적부터 예능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방송반에서 아나운서
활동을 하면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정혜선은 무남독녀에다 설거지도 안 해보고 귀하게 자랐다고 한다.
정혜선
“초등학교 때부터 학예회에서도 뽑히고 무용도 하고 노래도 잘하는 편이었어요.
수도여고에서는 방송반 활동과 웅변을 하며 상도 꽤 받았고요.
특히 무용. 무용 선생님이 ‘영자야(정혜선의 본명), 넌 무용해야 해’라고
해주시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해요. 사실 집이 가난했죠.
그런데 무용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 부모님 생각을 해서 안 했어요."
대부분의 가정집에 TV가 없던 그 시절
당시만 해도 연예인을 딴따라로 부를 만큼 인식이 좋지 않았을 때였는데,
‘뭔가를 알았던’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한다.
딸의 재능을 알아본, 열린 생각을 가진 아버지 덕분에 시작이 평탄했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연기자로 살아갈 운명이었나보다.
정혜선
"아버지가 원고를 써주는 등 많이 도와주셨어요.
심지어 탤런트가 뭔지도 모르던 때에 아버지가 지원 원서를 가져다줬어요.”
성우 생활
수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우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성우 출신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본인 이야기는 방송관계자(대전MBC)들과
지인으로 가깝게 지내다가 보니 생긴 소문일뿐 성우출신이 아니라고 한다.)
어머니가 작명소에서 지어오신 혜선(惠先)이라는 예명과 함께
KBS 공채 1기로 연기 생활을 시작하였다.
정혜선
"남편을 잃고 외동딸인 나와 단둘이 살던 어머니가 내가 시집을 가고 난 후
딸도 없는데 이 세상을 떠나자 생각하고 약을 잡수신 것 같다"
정혜선
"그 당시 왜 엄마는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두지 않는지,
왜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지 원망을 했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금에 와서는 살아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생전 더 잘 해드릴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아버지도 없이 어머니와 둘만 살았던 탓에 홀로 될 어머니를 생각해
시집을 늦게 갔어야 했어야 했는데 뭐가 좋다고 그렇게 빨리 갔는지”
2. 정혜선 동료 배우 박병호와 결혼
1963년 KBS 공채 동기로 만나 박병호와 결혼
KBS 공채 동기이자 국회의원 우상호 의원의 외삼촌인 박병호와 결혼했다.
배우 정혜선과 박병호는 KBS 공채 동기로 만나서 결혼했다고 한다.
신문기사 - '김장담는 정혜선과 박병호 부부'
전 남편 박병호의 영화 제작으로 생긴 빚
정혜선은 탤런트 출신인 전 남편 박병호의 영화 제작으로 생긴 빚을 갚느라
약 10년간 출연료 대부분을 차압당했다고 한다.
그는 전남편 박병호의 사업 실패로 생긴 빚을 갚느라 출연료를 차압 당하는 등
힘든 시간을 겪은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1975년 이혼
이혼 이유는 개인 사생활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박병호의 사업 실패 등의 원인으로 추측.
결혼 생활 당시 두 사람은 슬하에 세명의 자녀를 뒀다.
정혜선은 이혼 후 혼자 세 자녀를 키워야 해서 재혼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배우 정혜선은 재혼하지 않고 자녀들을 양육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정혜선(자녀들을 키울때 많이 힘들지 않았냐?)
"힘들다고 생각한적은 없었다. 혼자 세 자녀를 키우면서도 행복함을 느꼈다"
이혼 후 생활
남편과의 결별은 이혼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당시 박병호가 영화제작으로 생긴 빚을 일부 떠안으면서 ,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의 빚까지 갚아나가야 해서, 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던 그녀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한다.
정혜선
“서른두 살에 다시 싱글이 됐죠. 여자로서 정혜선은 불행했지.
그 부분에서는 인생의 패배자라고 생각해요. 여자로 태어나 남편 잘 만나
아이 행복하게 키우면서 가정 잘 이끌어가고 그랬어야 했는데…
짚신도 짝이 있는데 지금까지 혼자 살았다는 건 비극이에요.
물론 그동안 날 좋아하는 이도 있었고 중매도 들어오곤 했지만 지금은 혼자야.”
정혜선 (전남편에 대해)
"원망하지 않는다. 내 팔자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것저것 따지니까 안 됐다. 하지만 한 번도 외롭다는 생각은 한 적 없다
왜 이 얘기가 안나오나 했다, 누구나 빚을 안 지고 사는 사람은 없다. 대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그런 사고가 생겼다. 남편이 영화도 제작하고 여러 가지를 했는데 부도가 났다.
고통스러웠지만 기대어 신세를 질 만한 사람도 없었어요.
현재 법은 다를 수도 있지만 당시엔 부부가 함께 갚게 돼 있다. 그래서 제 출연료도 차압당했다."
정혜선
"기본 생활비로 써야 하는 1/3 정도만 썼고, 나머지 돈은 빚쟁이가 다 가져갔다.
그래도 채권자 분들이 순순히 기다리기로 해서 제 출연료를 3분의 2씩 가져갔죠.
그런 걸 생각하면, 그분들에게 고맙죠. 지금은 다 고인이 되셨지만.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누가 단돈 100원도 안 준다
그때는 철이 없어서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해야 되나' 했다.
요즘은 머리가 좋아서 극단의 선택을 해서 빠져나간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 그랬는지 바보 같아서 그랬는지 죽는다는 방법을 생각을 못 했다.
어떻게 해서든 열심히 드라마에 출연해서 갚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30대때 전남편 때문에 진 빚을 갚는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신혼부터 10여 년간 월세 방을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다
경매딱지가 붙어 집도 없는 상태로 단칸방을 돌아다녔다"
2011년 KBS 2TV 여유만만 에 출연 - 정혜선
30대 때 거의 10년 동안 전남편의 빚을 갚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빚을 갚는 10년 동안 집도 구하지 못했고,
신혼 때부터 10여 년간 월세방을 옮겨 다녔다.
매일 집에 딱지가 붙고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 단칸방에서도 살아보고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에는 내가 힘든 줄은 몰랐다. 내가 남편 잘못 만난 내 탓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이혼 후에도 묵묵히 다 갚으며 세 자녀를 키워냈다고 한다.
자녀들은 어느덧 성장해 세자녀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하며,
정혜선은 종종 미국으로 날라가 자녀들과 휴가를 즐긴다고 한다.
정혜선
"방송국에서 시청률 높으면 보내주는 해외여행도 제대로 못 갔죠.
늘 바빠서 쉴 틈이 없었어요. 내 인생은 완전히 일의 연속이었어요.
물론 내가 워커홀릭 성향도 있지만, 연출자들이 나를 도와주려고 더 불러줬던 것 같아요.
일만 하는 정혜선이었죠. 일 안 하면 죽는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요즘 쉬면서 생각해보니 일이 다가 아니구나 싶어요.
너무 늦게 알았지. 지금은 쉬면서 봉사도 하러 다녀요.
내가 나서기만 해도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이 좋아해서 시간이 나면 자주 가고 있어요.
무엇이든지 내가 쓰임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정혜선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요.
어려운 사람 있으면 가능한 한 힘닿는 대로 돕습니다.
그러니 무언가에 꽂히면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밖에.
연기자에겐 숙명적 성향 같아요. 그저 일만 하고 살았지.
사실 이제 내일모레면 팔십이니까 걷는 것도 귀찮죠.
집에 앉아서 선풍기 바람 쐬는 게 가장 행복해요.
스케줄 없을 때는 여기저기서 식사하자고 하니 사람을 만나게 되네요.
내가 거절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하루에 꼭 두세 가지 일은 있더라고.”
박술녀 한복 디자이너
“20여 년 곁에서 지켜봐온 정혜선 선생은 한결같은 성실함과 노력으로
늘 수수하게 살아서 때로는 연예인인지 자연인인지 분간이 안 간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제의를 거절하는 이유
“내가 거기 나가서 남을 즐겁게 해줄 용기가 없어요.
과거에는 디너쇼까지 하면서 끼를 보여줬는데 지금은 다 늙어서."
정혜선
“지인과의 인연으로 NBS한국농업방송에서 프로그램을 하나 맡았어요.
‘그땐 그랬었지’라는 프로그램에서 제가 내레이터를 하기로 했어요.
한 달에 두 번 방송을 하는데 작업을 해야 하니까,
어디로 움직이는 건 당분간 불가능해요."
정혜선씨의 삶에서 우리가 봐왔던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TV에서 보는 정혜선은 거칠고 과격한, 세월의 풍파에 시달려 독해진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지만 배우 정혜선씨의 실제 성격은
조용하고 나긋나긋하며 차분한 목소리를 지닌 천생 여자라고 한다.
자기 삶을 희생하며 사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30·40대에 할머니역을 맡던 주로 맡았던 그녀는 60대가 넘으면서
카리스마와 온화함이 있는 ‘사모님’과 ‘여사님’ 연기를 주로 했다.
정혜선
“나는 애써 관리해온 게 아니라 책임감 있게 살았던 것뿐,
인간이기 때문에 욕심이 많아요. 그런데 ‘부자가 됐으면’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사업은 내 길이 아니에요."
3. 전남편 박병호 근황
1977년 전남편 박병호 재혼
정혜선과 이혼한 박병호는 2년 후 12세 연하인 디자이너와 재혼했다.
박병호는 배우 안성기의 처외숙부이기도 하다.
전남편 박병호 근황
"사업을 많이 했고, 당시 부채가 1970년 4억 빚을 졌다"
박병호는 12세 연하와 재혼해 현재 남해에서 아내와 살고 있다고 한다.
현재 한 회사의 대표로 재직중이라고 알리며 현재의 아내와의 생활에 대해 만족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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