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남자 중고생들의 일명 3대 여신이던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당시 한국 배우로는 이미연과 이상아였다.
중학생 때부터 본격 연기 생활을 한 이상아는 80년대 중후반 일약 스타덤에 올라
빼어난 외모로 하이틴 스타가 되었다.
어느덧 50대인 배우 이상아의 전성기 시절을 알아보자.
1. 이상아 프로필
2005년에 '이민주'로 개명했으나 1년 뒤인 2006년부터 원래 이름인 '이상아'로 활동명을 변경했다.
이름 이상아 李尙雅 | Lee Sang Ah
본명 이민주 (본관 덕수 이씨 )
출생 1972년 2월 14일 (51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신체 163cm, 45kg, 235mm, B형
소속사 후이엔이(후엔터테인먼트)
종교 개신교 모태신앙 신자라고 한다.
학력
- 서울신용산국민학교 (졸업)
- 용산여자중학교 (졸업- 現 용강중학교) -
-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 졸업)
- 서울예술전문대학 (방송연예과 / 전문학사) 학점은행제 (미용학 / 학사)
단국대를 목표로 했지만 낙방한 후 서울예전으로 하향지원하여 합격했다.
안양예고 동창인 남희석도 같은 케이스라서 둘은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도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데뷔
1984년 중학교 1학년 때 KBS 드라마 '산사에 서다'로 연기자 데뷔하여,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하이틴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가족
부친 : 이경식(1926.3.27~?) 평안남도 강서군 출생)
영화감독 제작자 작가. 서울사범학교 본과 3년 졸업.
1956~1957년 유현목 감독 밑에서 조연출 활동.
소낙비(1958) 연출, 별들의 화원(1960) 제작 각본 연출, 춘향전(1961) 조연출,
비단이 장사 왕서방(1961) 제작.
원래 넉넉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집안이었지만, 이상아가 연기 생활을 한 이후부터
어머니가 이상아의 매니저를 하면서 가족들은 딸의 수입에 의존, 흔한 헐리우드 아역배우의
부모처럼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상아가 벌어오는 수입을 매번 탕진했으며,
이상아가 조금씩 주목 받기 시작한 중학교 초반에 영화감독 출신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모친 : 박명숙
언니 이상은
언니와 여동생의 학비, 결혼 비용까지 다 마련해야 했다고 한다.
특히 여동생은 예체능, 그것도 무용을 전공했다.
여동생 이상희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졸업.필라테스 강사.
TV조선 엄마가 뭐길래 63회 출연(2017.1.26)
조부 이종극
제6대 국회의원(전국구), 제3대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
숙부 이일
본명:이진식 (1932.1.22~1997.1.27) 평안남도 강서군 출생.
전 홍익대 교수, 특파원 출신 미술평론가.
프랑스 문화예술훈장(1995) 보관문화훈장(1999).
저서 : 현대미술의 시각(1985), 서양미술의 계보(1992)
자녀
딸 윤서진(2000년생)- 2번째 남편 소생.
2018년에 고3이었던 딸의 인스타그램의 팔로워가 6만 명이 넘는 수여서 화제가 되었다.
이상아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lee_sang_a0214/
1970년대, 80년대는 그야말로 가위질로 대변되는 검열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당시 10대들은 암암리에 테이프나 LP, 영화 등을 소비하면서 문화 소비층이 되었고
이런 트렌드에 80년대 중후반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이상아였다.
남자 중고생들의 일명 3대 여신이던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
대항마로 떠오른 한국 여배우가 이미연과 이상아였다.
소피 마르소는 1966년 11월생, 브룩 쉴즈는 1965년 5월생, 이상아는 1972년 2월생으로 훨씬 더 앞선 세대지만
(세 여배우 모두 이상아가 데뷔하기도 전에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 연기자들이었다),
당시에는 외국 영화가 한국에 들어오는 데 2-4년 걸렸었다. (물론 일본 영화 잡지를 통해 개봉 전 먼저 알려지긴 했다.)
참고로 1970년대 후반에 이미 유명해진 두 여배우에 비해선 조금 늦게 데뷔한 피비 케이츠의 경우에는
고교 때 데뷔한 두 여배우와는 다르게 파라다이스를 찍던 1981년에 이미 줄리어드 스쿨을 다니던 대학생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본격 연기 생활을 한 이상아는 고교생 때부터 제대로 활동한 이미연과는 같은 학년이자
5개월 차이가 나며, 전성기는 좀 차이가 난다.
1980년대 하이틴 스타 이상아 , 하히라 , 김혜선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하이틴 스타로서 큰 인기를 얻으며 이름을 날리게 된다.
1970년대에는 이영옥, 임예진, 강주희 등이, 이후 이상아와 비슷한 시기에는 강수연과 조용원,
최수지, 김혜수, 하희라 등이 하이틴 스타로 크게 활약을 했다.
비슷한 연배의 최진실은 성인이 되어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하이틴 스타는 아니었다.
나이 차는 3년 최진실이 많지만, 이상아가 널리 알려진 시기가 더 빨라 5년쯤 차이가 난다.
2. 결혼생활(3번의 결혼 2번의 이혼)
1997년에 동갑 개그맨 김한석과 결혼
동갑내기 개그맨 김한석과 결혼했으나, 1년 뒤 이혼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 탓인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굴곡이 심한 편이었다.
2000년 가수 겸 영화 기획자 전철과 재혼
또 1년 만에 이혼했다.
딸의 돌잔치 사진만은 남겨두고 싶어 딸의 돌잔치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혼했다고 한다.
2003년 윤기영과 재혼
잘 살고 있었지만, 2016년에 결국 이혼 보도 기사가 나왔다.
이혼 전 누드 화보 촬영을 했었다.
2019년 1월 1일 tvN 둥지탈출 시즌3
이상아
"딸도 이제 컸고 검색하면 엄마의 사생활은 다 나온다.
사생활에 대해 얼마나 싫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딸 윤서진과 함께 출연하였지만 ,악플이 이어졌는데 ,
사유는 계속된 3번의 결혼과 이혼이다.
이상아 인스타그램(방송 이후)
"둥지탈출 어떠셨나요? 화려한 댓글들 여전하더군요.
우리 주니어가 상처를 안 받았음 좋겠네요, 참나. 아직도 결혼 3번째..
뭐 이런 얘기 이제 식상하지 않나요? 남 얘기 너무들 쉽게 하는 세상.
요즘 세상.. 모든 일들이 나한테도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쉽게 말하지 못할텐데 아쉽네요"
인생 한 치 앞도 못 보는데.. 내일을 점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후에도 딸을 향한 악플이 계속 이어졌다.
이상아 2019년 1월 4일
"살면서 좋은 말만 듣고 살 수는 없지만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말로 사람을 죽이는 수준 부득이하게 인스타그램 친구를 정리하게 됐다며 게시물 30개 이하,
비공개인 분들은 차단할 것. 이해 부탁드린다"
소속사 마라톤엔터테인먼트
이상아는 자신과 딸에 대해 악성 댓글을 게시한 네티즌에 대해 소속사를 통해 고소장을 제출
3. 이상아 드라마와 영화 이야기
1985년 영화 '길소뜸'(임권택 감독)
그녀는 어릴 적 연기 인생에 고난이 많았는데 당시 중2였는데 임권택 감독의 협박?으로
미성년자 베드신 및 알몸 노출씬을 찍었다고 한다.(단, 영화에선 뒷모습만 노출)
대본도 안 주고 연기를 시키다가, 필요한 시점이 되자 전라 베드신 안 찍으면 찍은 장면
다 물어내야 된다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당시 사회 인식이 얼마나 뒤쳐졌었는지 보여주는 한 방증.
21세기인 지금엔 꿈도 못꿀 일이다.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 - 1981 ~ 1986
영화 말괄량이 대행진 - 1986
영화 젊은 밤 후회없다 - 1986
영화 학창 보고서 - 1987
영화 너와 나의 비밀일기 - 1987
영화 얄숙이들의 개성시대 - 1987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 - 1987~1990
영화 팁 - 1988
드라마 독도수비대 - 1989
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 - 1989
영화 아낌없이 주련다 - 1989
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 '너와 나의 비밀일기'를 비롯해 특히 대학생들한테
큰 인기를 끌었던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 출연하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아이돌 스타 못지 않게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각종 광고에 등장했다.
드라마 몽기미 풍경 - 1990
드라마 완전한 사랑 - 1990
영화 성인신고식 - 1990
영화 쫄병수첩 2 - 1990
드라마 목소리를 낮춰요 - 1991
드라마 고독의 문 - 1991
드라마 3일의 약속 - 1991
영화 넝쿨 속의 히야신스 - 1992
드라마 추리 3부작 - 1992
드라마 사랑과 우정 - 1993
드라마 뜨거운 강 - 1993
드라마 나팔꽃 - 1993
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 - 1993
드라마 좋은걸 어떡해 - 1994
드라마 무당 - 1994
개신교 모태신앙 신자인지라 무당 촬영 당시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상아는 교회 목사로부터 그만 두라는 충고를 받았고,
신앙적 문제로 초기부터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1994년 드라마 '마지막 승부'
먼 훗날, 손지창이 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마지막 승부'의 원래 여주인공은 심은하가 아닌 이상아였다고 한다.
복잡한 사유로 바뀐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성 조연으로 캐스팅된 여배우가 초반 연기연습 때
너무 못하는 바람에 잘리게 되었고, 그 조연을 채우기 위해 제작진들이 신인 탤런트 중에 찾다가
심은하를 찾게 되었는데 아예 심은하가 주인공 이미지에 더 잘 어울린다고 판단하는 바람에
심은하가 주인공이 되어버렸고, 연기력에 문제도 없고 인지도도 높았던
이상아는 그 잘린 여배우의 조연 자리로 가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나이는 같아도 이상아는 아역스타 출신으로 연기경력이 길어, 당시 성인이 되어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심은하보다 훨씬 인기와 인지도가 높은 선배였다.
심은하는 사실 데뷔 1년차 배우로 데뷔가 몇 달 되지 않아 단역 정도만 전전하고 있었다.
그 드라마가 공전의 대히트작이 된 걸 보면 이상아에게는 억울한 사연.
심은하와 비슷한 신인이었던 신은경도 이 드라마에서 심은하처럼 비중이 높지는 않았어도 조연을 했고
드라마의 대히트로 인지도를 올려, 이후 종합병원이라는 드라마에 주요 배역으로 섭외되며 스타가 되었다.
마지막 승부에 출연한 당시 인지도 낮은 신인배우들은 마지막 승부로 인해 잘 나가게 된 경우가 많았다.
손지창, 이상아
영화 아빠는 보디가드 - 1995
드라마 내 사랑 유미 - 1995
드라마 다시 만날 때까지 - 1995
드라마 만남 - 1996
드라마 남자대탐험 - 1996
드라마 아무도 못말려 - 1997
드라마 LA아리랑 - 1997
드라마 미스 & 미스터 - 1997
드라마 여자 - 1997
드라마 재동이 - 1997
드라마 남자 셋 여자 셋 - 1997
드라마 7인의 신부 - 1998
드라마 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 - 1998
드라마 만남 - 1999
드라마 그녀의 선택 - 1999
드라마 그래도 사랑해 - 2001
드라마 오남매 - 2002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 2006
드라마 순결한 당신 - 2008
방송활동이 뜸했다가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와 SBS 아침 드라마 '순결한 당신' 등으로
복귀하였다가 다시 활동이 뜸해졌다.
이 시기에 성형외과 코디네이터로 근무했다는 루머가 들리기도 했으나,
나중에 본인이 '병원 광고모델로 활동했을 뿐 방송계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명했으며
9년 공백기 끝에 2015년 연예계로 복귀하였다.
드라마 스타박'스 다방 - 2015
영화 스피드 - 2015
드라마 언제나 봄날 - 2016
드라마 전생에 웬수들 - 2018
드라마 터치 - 2020
2023년 3월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을 찾아서 명계남 배우를 만나고 방명록을 쓰기도 했다.
https://hot-issue-xoxo.tistory.com/entry/%EC%A0%95%EB%8B%A4%EC%9D%80
https://hot-issue-xoxo.tistory.com/entry/%EC%9D%B4%EC%84%A0%EA%B7%A0-2